7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항의 시위 현장에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마스크를 쓴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다른 시위대와 함께 백악관을 향해 행진했다. 그를 알아본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걸자 그는 "사람들이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위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밋 롬니(유타) 공화당 상원 의원이었다. 2012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거물급 인사다. 여당 중진 의원이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위에 깜짝 등장한 것이다. WP는 "롬니가 플로이드 시위에 참가한 첫 공화당 상원 의원이 됐다"고 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공화당 거물 인사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롬니 상원 의원과 함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작고한 전쟁 영웅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의 아내인 신디 매케인 등은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유보했다.

콜린 파월 전 장관은 이날 CNN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반대하는 모두를 모욕하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며 "이것은 우리 민주주의와 나라에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한 콘돌리자 라이스도 이날 CBS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향해 "(논란을 일으키는)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하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와 관련해 군 동원 등 초강경 대응을 하는 데 대해 반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과거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도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지 않았고, 롬니는 트럼프의 대표적 앙숙으로 꼽힌다. 파월 전 장관도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2016년 대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는 트럼프의 승산이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할 경우 감세 유지, 보수적 법관 임명 등 공화당의 어젠다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반(反)트럼프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트럼프를 도저히 지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공화당 소속으로 2011년부터 2015년 하원의장을 했던 존 베이너와, 2015년부터 2019년 1월까지 하원의장을 한 폴 라이언도 트럼프 지지 여부를 밝히지 않을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일부 공화당원과 조지 W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바이든을 공개 지지하는 방안도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공화당 온건파의 이탈이 트럼프에게 실제 타격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공개된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 뉴스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45%로 지난 4월(46%)과 큰 변화가 없었다. 특히 공화당원들의 트럼프 지지율은 92%에 달해 거의 이탈 조짐이 없다. 트럼프가 2016년 대선 후보 시절 공화당원들의 지지율이 74%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각종 기행(奇行)에도 골수 공화당원들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