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5일 베트남 신속대응팀 격려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잠시 가라앉았던 한·일 정부의 갈등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한일 외교 당국 수장은 3일 전화 통화를 하며 75일만에 대화에 나섰지만 서로 ‘유감’ 표명을 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3일 오전 11시 45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 측의 사전 요청에 따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40분간 통화했다. 전날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일본 외무상이 지난해 12월 중국 청두에서 한일 장관 회담을 하는 모습.

강 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한국이 대외무역법 개정 등을 통해 일본이 제기한 수출규제 조치의 사유를 모두 해소했다”면서 “그런데도 수출규제가 유지되는 데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유예 결정을 하면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의 철회를 기대하며 각종 규제 면제 조건을 충실히 이행해왔다. 그런데도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지 않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유감 표명을 한 것이다. 다만 강 장관은 이날 통화에서 지소미아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유감’ 표명을 했다. 일 외무성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모테기 외무상이 강 장관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WTO 조치는)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극히 유감”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은 또 “수출규제는 양국 간 수출 실적에 따라 검토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밝혔다고 한다.

그는 또 징용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을 통해 압류한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 매각(현금화)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외무성은 전했다. 이에 강 장관은 삼권 분립을 강조하며 징용 배상 판결과 후속 조치에 대해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기존 원칙을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외교 당국 수장이 75일 만에 대화에 나섰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물론 징용 배상 등 양국 현안에서 이견을 전혀 좁히지 못한 것이다.

다만 양측은 이날 통화에서 코로나와 관련해선 “협력을 지속하자”는데는 뜻을 같이했다. 일본은 지난달 한국 백혈병 어린이를 국내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전세기를 내줬다. 이에 강 장관은 모테기 외무상에게 서한을 보내 사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