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100척 수주'라는 낭보가 날아들자 수주 가뭄에 시달리던 조선(造船)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 QP(카타르 페트롤리엄)는 1일(현지 시각)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100척 이상의 LNG 운반선 슬롯(독·배를 만드는 공간) 예약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슬롯 예약은 정식 발주 전에 건조 공간을 확보하는 절차여서 100척 모두 건조하는 게 확정된 건 아니지만, 한국 조선업의 오랜 불황을 넘어설 수 있는 전기(轉機)가 될 것으로 보인다.

LNG 100척 수주… 조선업 살아나나

2일 국내 조선 3사의 주가는 폭등했고,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회사 주가까지 덩달아 올랐다. 업계에서는 LNG 분야에서 한국 조선의 기술력이 중국보다 크게 앞서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기 때문에, 대규모 LNG선 건조를 검토 중인 다른 선사들의 발주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로나 사태와 유가 급락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선박 발주가 급감한 가운데 대형 프로젝트가 성사됐다"며 "지난 4월 중국 후동중화조선이 카타르 LNG 프로젝트 계약을 제일 먼저 체결하면서 한국 조선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나왔지만 상당 부분 해소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소 일감이 줄어 인원을 줄이려는 시점에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김환중 거제상공회의소 회장)이라며 조선소 주변 지역사회도 환영했다.

2018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작업자들이 납기 기한을 맞추기 위해 불을 켜고 야간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수주 가뭄을 겪고 있던 국내 조선업체들은 ‘카타르 LNG(액화천연가스)선 100척 수주’를 계기로 이런 야간작업이 다시 시작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00척이 한꺼번에 한 회사에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5년에 걸쳐 3개 회사가 나눠 갖기 때문에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며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QP와 조선 3사는 정확한 물량 배정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국내 조선 3사가 카타르로부터 LNG 운반선 53척을 수주한 2004년에도 당초 슬롯 예약 물량은 90척이 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실제 수주 규모는 100척에 많이 못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엎치락뒤치락… 한·중·일 LNG 삼국지

"리바이어던(성서에 나오는 거대한 바다 괴물)이 한국의 조선소를 왜소하게 만든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1위 조선사인 중국선박공업(CSSC)과 2위 조선사인 중국선박중공(CSIC)의 합병을 승인하자,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렇게 보도했다. 당시 '덩치만 큰 회사'의 탄생이라고 평가절하했던 한국 조선업계는 카타르 LNG 운반 수주전에서 CSSC 소속의 후동중화조선이 첫 계약(최대 16척)을 따내자 충격에 휩싸였다. 독식을 자신했던 한국 조선사들의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뒤이어 러시아 국영에너지 회사 노바텍이 발주할 쇄빙(碎氷) LNG 운반선 10척 중 5척도 중국 업체가 수주할 것이 유력하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대우조선해양도 5척을 따낼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량 수주를 자신했던 사업이었기 때문에 한국 조선사에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저렴한 가격에 LNG선을 성공적으로 건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경우 한국 조선업계에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며 "한국이 LNG 건조 기술에서는 중국보다 5년 이상 앞서 있지만, 중국의 예상보다 빠른 추격 속도에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008년 삼성중공업이 카타르에 인도했던 LNG 운반선과 LNG를 담는 화물창의 내부 모습. 천연가스를 영하 163℃의 극저온상태로 액화해 운송하기 때문에 항온 유지, 폭발 사고 방지 장치 등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 조선업계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업체들이 주름잡던 LNG 운반선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시장 판도를 바꾼 경험이 있다. 일본은 4~5개의 거대한 돔 형태 용기에 LNG를 담는 '모스' 타입의 LNG 운반선으로 업계를 장악했다. 국내 업체들은 이에 맞서 선체와 화물창을 일체형으로 설계해 적재 공간을 모스 타입보다 40% 이상 늘린 '멤브레인' 타입을 개발, 1990년대 후반부터 세계 LNG 운반선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왔다. 자연 발생하는 증발가스를 100% 액화, 화물창에 집어넣는 '완전재(再)액화시스템' 역시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와 은행이 한몸처럼 자국 조선사들을 지원하며 한국 조선사들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카타르발(發) '100척 수주'는 한국 조선업계가 중국의 무서운 추격을 뿌리치며 또다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사건으로 평가된다.

러시아, 모잠비크 추가 물량 기대

카타르 수주에 이어 러시아 프로젝트, 모잠비크 LNG 프로젝트 등 다수의 LNG선 발주가 연내에 계속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LNG운반선 프로젝트는 이미 1차 5척을 삼성중공업이 따내 건조 중이기 때문에, 나머지 10척도 삼성중공업이 수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대 17척이 발주될 것으로 예상되는 모잠비크 LNG프로젝트 역시 상당수를 국내 조선사가 수주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의 완전 부활을 선언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재선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22년 이후 LNG선 발주 사이클이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앞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LNG 프로젝트의 88%를 점유한 미국이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또 LNG 운반선 한 척을 수주할 때마다 화물창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프랑스 GTT에 100억원씩의 기술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등 근원 기술 자립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