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선생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란 소설이 떠오를 때마다 혼자 웃는다. 선생이 나와 고향이 같다면 '비탈' 대신에 '나무들 빈달에 서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고향에선 '비탈'이란 낱말 대신에 비탈진 언덕바지는 그냥 '빈달'로 뭉뚱그린다.

고향을 떠난 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비탈'이란 말보다는 '빈달'이란 표현을 더 자주 쓰고 있다. '비탈'과 '빈달'이란 낱말의 사촌쯤 되는 단어에 '치거리'란 게 있다. '빈달'과 '치거리'는 비슷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다르다. '빈달'은 고도로 따지면 약간 높은 곳에 있고 '치거리'는 그보다는 약간 낮은 곳에 위치한다. '치거리'는 동네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언덕과 들판의 경계 지점 일대를 아우르는 것으로 농촌 마을 중에서도 후미진 곳에 속한다.

어머니의 먼 일가 할머니가 북산(北山) 치거리에 살고 계셨다. 할머니는 장날만 되면 "애야네야, 칼치 찌진 것 맛보러 왔다"며 어머니를 졸라대곤 하셨다. 피차 가난을 넝마처럼 걸치고 사는 농촌 생활이지만 어쩌다가 파장에 싸게 파는 간 갈치를 사오시면 어머니는 나를 북산으로 갈치조림 심부름을 보내셨다.

어릴 적부터 익혀온 정겨운 사투리는 엄청 많지만 그중에서도 '빈달'과 '치거리'는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내 의식 주변에서 항상 맴돌고 있다. 직장에서 은퇴한 후 동창 친구들과 산행 모임을 결성한 적이 있었다. 남은 생애 동안 천 개의 산을 오르자며 '천산 산악회'로 명명했다. 요즘은 회원이 줄어 산의 아랫도리에 해당하는 산 치거리만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치거리산악회 4학년 졸업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