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은 청와대가 곧 정부다. 과거 어느 정권보다 청와대의 힘이 막강하다. 행정부와 국무위원들은 청와대 위세 앞에 절절 맨다. 여당도 ‘몸집만 큰 바보’ 같다. 허울만 180석일 뿐 청와대 출장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아니 청와대 출신들이 21대 국회의원에 대거 당선됨으로써 그런 구분도 무의미해졌다. 4·15 총선 결과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출신이라는 이력을 내걸고 출마한 30명 중 19명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청와대 출신 총선 출마자는 모두 30명이나 된다. 수석비서관급이 4명, 비서관급이 13명, 행정관급이 13명이다. 이들이 포진하고 있는 여당은 청와대의 입안에 든 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청와대의 빈자리를 누가 채우나 했더니 ‘문재인 소나타’가 울려 퍼지고 있다. 엊그제 교육비서관에 임명된 박경미 전 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박 비서관은 2016년 20대 총선 때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천거로 비례대표 1번으로 영입됐었다. 수학 교수 출신이긴 하지만 교육 정책 분야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준 바는 없다. 박경미 교육비서관이 보여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작년 11월 유튜브에 올렸던 월광소나타 연주 장면이다. 자신이 직접 연주했다.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4번, 올림다단조, 작품번호 27-2, 일명 ‘월광소나타’란 곡은 너무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이 작품은 베토벤이 음악을 사랑하는 눈먼 처녀를 위해서 썼다고도 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교외에 있는 한 귀족의 저택에서 달빛에 감동하여 썼다고도 하고, 연인인 귀차르디에 대한 이별의 편지 차원에서 작곡했다는 얘기가 있다.

박경미 의원은 월광소나타 피아노를 치면서 내레이션을 이렇게 읊조린다. "잔잔한 호수에 비치는 달빛의 은은함이 느껴집니다. 이 곡은 주제 선율을 과시하지 않고 은근하게 드러냅니다. 저는 이런 월광소나타, moonlight, 달빛소나타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정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는가. 베토벤이 다시 살아나서 이 말을 들었다면 뭐라고 할까.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한 나라의 헌법기관으로서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입법부의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행정부의 수장인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 그의 성정이 천하의 명곡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닮았다니,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자라는 인기척만 나도 물속으로 달아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간부들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우리 원수님은 참으로 비범출중한 분"이라고 찬양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는데, 박경미 의원의 ‘문재인 소나타’는 그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지난달 24일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 검사가 세계적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부른 ‘달님에게 보내는 노래’를 문 대통령에게 바치는 노래인 양 페이스북에 소개하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북조선이나 남조선이나…조선은 하나다." "북에는 ‘인민의 태양’이 계시고, 남에는 ‘국민의 달님’이 계신다"라고 비틀어서 개탄하기도 했다.

박경미 당시 의원의 해당 유튜브는 제목이 ‘박경미가 문재인 대통령께, Moon Light’이다. 혹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못 알아차릴까봐 아예 제목을 박경미가 문재인 대통령께 보내는 찬양가라고 정확하게 명시한 것이다. 길이가 4분34초로 카메라도 여러 대를 쓰고, 편집도 꽤 공을 들여서 만들었다. 박경미 의원은 월광소나타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풀이하면서 계속 문재인 대통령에게 긍정적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돼 있다.

"(…) 이 곡은 피아니시모로 침울하게 시작하지만 (…) 그래도 다시금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감정의 기복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저는 그 과정이 한반도 평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북한은 미사일을 쏴대고 참 우울했습니다. (…) (저는) 조만간 문재인 정부가 월광 소나타의 3악장에 도달해서 검찰개혁을 완수하고, 그동안 조용히 추진하던 정책들이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 혁신·포용·공정·평화의 길을 가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그 길에 화려한 3악장이 연주될 수 있도록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는가. 살다 살다 이런 용비어천가는 처음 들어봤다. 요즘 ‘문(文)비어천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해준다. 친문 인사들은 ‘문재인’ 이름의 성(姓)인 글월 ‘문(文)’을 소리 나는 대로 영어의 ‘문(moon)’에 견주어, 그러니까 달에 빗대어 미화하곤 하는데, 박경미 당시 의원도 그 찬양 대열에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특히 박경미 의원이 ‘문재인 소나타’를 차려서 헌상(獻上)했던 작년 11월은 문재인 대통령이 상당한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었다. 밖으로는 ‘외교적 왕따’ 상황에서 남북 관계가 완전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고, 국내적으로는 ‘조국 사태’가 절정을 치달으면서 진보 진영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가던 시기였다. 그때 문 대통령이 박경미 의원의 ‘문재인 소나타’ ‘달빛 소나타’를 들었으니 아마 감동을 받아 울컥했을 것이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그 ‘달빛 소나타’를 잊지 않았다. 박경미 비례 의원은 지난 4·15 총선에서 서울 서초을 지역구에 출마해 떨어졌다. 박경미 의원은 5월말로 20대 국회의 의원 임기가 끝나 백수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단 하루의 공백도 두지 않고, 그 이튿날 박경미 의원을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박경미 의원은 작년 11월 그때 이미 6개월 앞을 내다보고 확실한 구직 활동을 했던 셈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