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이 갑갑했던 남자는 바람을 피웠고, 이혼을 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 재결합할 희망을 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처의 재혼 소식을 듣고, 트렁크에 있던 와인을 꺼내 병나발을 불었다. 영화 '사이드웨이'의 주인공 마일즈(폴 지어마티). 박스째 구입한 이 와인은 미국 칼라이라 와이너리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주인공 지선우(김희애)가 병나발을 분 건 이혼 전이다. 남편 이태오(박해준)가 바람피운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땐 코냑 '카뮤 XO 슈페리어'를 마셨다. 원래 코냑은 체온으로 데워가며 마시는 거라, 위스키 잔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장면이 애주가들 사이에선 NG(오류)라며 논란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전화를 받고 나간 남편의 목적지가 불륜녀의 집인 걸 알게 된 순간 지선우는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 병나발을 분다.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메종 블랑시'다. 3만원대 중저가 와인으로 불고기, 족발 등 한식에 잘 어울린다.

극 중 주인공들은 이혼의 슬픔을 와인으로 달랬다. 여자는 이별 직후, 남자는 이혼 후 2년이 지나서라는 게 다를 뿐. 원래 이별 후폭풍은 남자가 여자보다 늦게 온다.

와인은 잔이 중요한 술이다. 다행히 두 사람 다 병나발을 부는 와인은 중저가다. 그러나 둘 다 고급 와인을 꺼내는 순간이 있다.

친구와 내파밸리를 여행하며 이혼의 아픔을 와인으로 달래는 마일즈(왼쪽).

지선우는 복수의 자리다. 남편의 불륜녀 가족에게 폭로하러 갈 때 보르도의 '샤토 레이빌 바르통'을 꺼낸다. 30만원대로 진한 자주색을 띠고 풍부한 과일 향을 낸다.

'사이드웨이' 마일즈도 비싼 와인을 하나 간직하고 있다. 1961년산 보르도의 '샤토 슈발 블랑'이다. 최근 빈티지 가격이 120만원 선인 고급 와인이다. 진한 루비색에 체리, 발사믹, 민트 향이 차례로 올라온다. 원래 10주년 결혼기념일에 마시려고 했고, 이혼 후에도 언젠가 재결합하면 마시려고 아껴둔 와인이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웨이트리스가 "마시자"고 했을 때도 열지 않았다. 그녀와 데이트하며 위트크래프트, 시 스모크, 키슬러, 루이 라투르 포마드까지 마셨지만 이걸 꺼낼 정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남자는 여자가 마음에 들수록 비싼 술을 꺼낸다.

이 와인을 전처가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는 혼자 패스트푸드점에 가 스티로폼 컵에 담아 마신다. 재결합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게 소주를 마시며 지선우에게 매달리는 이태오나, 혼자 궁상맞게 햄버거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마일즈나 있을 때 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