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와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전화로 전문의약품을 처방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는 대면 진료 없이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혐의(의료법 위반)로 기소된 의사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2011년 2월 지인의 부탁으로 환자 B씨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으로 상담한 후 비만 치료제 플루틴캡슐 등 전문의약품을 처방해줬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의료법에서는 환자를 직접 관찰하거나 검안하지 않고 환자에게 처방전을 내줘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병원비 결제 내역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대면 진료 없이 전화 처방이 이뤄졌다고 보고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의사가 환자와 대면하지 않았다고 해도 전화로 충분히 진찰이 이뤄졌다면 처방이 가능하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의료법에서 처방전을 내주는 조건으로 명시한 ‘직접 진찰’은 비대면 진찰이 아니라 의사를 대리한 처방을 금지한 것이라는 취지다.

판결은 상고심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전화 처방은 가능하지만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1회 이상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고 봤다. A씨가 전화 처방을 하기 전 B씨와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고 전화 통화 때도 B씨의 상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진찰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신뢰할만한 환자의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는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