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출신의 전·현직 국무총리가 '문심(文心)' 잡기 경쟁을 벌이며 차기 대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여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당선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종로 지역구를 물려주고 '코로나 국민 총리'라는 별명을 얻은 정세균 국무총리도 대선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정 총리를 만난 여권 인사들은 하나같이 "정 총리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호남 출신의 한 여권 정치인은 24일 본지 통화에서 "정 총리가 이낙연 전 총리를 정 돕고 싶으면 '10' 중에 '4'만 돕고, 나를 '6'을 도우라고 하더라"며 "농담조로 한 얘기지만 말 속에 뼈가 있었다"고 했다. 정 총리는 올해 초 인사청문회에서 "전혀 차기 대선 출마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이번 코로나 국면을 거치면서 주변에서 "성공적인 총리직 수행 후 대선으로 가자"는 제안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정 총리는 최근 여야를 넘나들며 정치권 인사를 두루 만나고 있다. 문 대통령과는 주례 회동 외에도 코로나 국면에서 시시때때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대응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청와대와 총리실이 한 번도 큰 소리가 난 적 없이 찰떡궁합이었다"고 했다. 정 총리는 총선 후 자신과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들과 비공개 당선 축하 자리를 여러 차례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 '정세균계' 핵심은 김영주·이원욱·김교흥 당선자 등 10여 명이다. 당 관계자는 "'범정세균계'로 넓히면 30명이 넘는다"고 했다.

정 총리는 '범친노'로 분류되지만 친문 핵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 경쟁자였던 문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뒤부터 친문 지지층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쩍 친노·친문 진영과의 친밀성을 강조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을, 문 대통령이 총리를 시켜줬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식이다. 노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 직전 "노 전 대통령이 이루고자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을 꼭 만들겠다"고 했고, 문 대통령 취임 3주년 날엔 "지난 3년은 대통령님의 위기 극복 리더십이 빛난 시기였다"고 했다. 정 총리와 가까운 한 여권 관계자는 "친문 입장에서는 이낙연 전 총리보다는 정치를 함께해온 정 총리가 심적으로 훨씬 더 가깝다"고 했다.

이낙연 전 총리도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바탕으로 민주당 내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 총리가 전북과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 6선을 하고 당대표를 3번 역임하는 동안, 이 전 총리는 전남에서만 국회의원 3선과 도지사를 지낸 뒤 총리로 발탁됐다. 당내 기반만 놓고 보면 이 전 총리보다 정 총리가 좀 더 앞선다는 평가다. 이 전 총리가 8월 당대표 선거 출마 여부를 고심 중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당초 이 전 총리 측근들은 당내 기반 확대를 위해 "무조건 출마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이 전 총리도 출마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 이 전 총리를 만난 한 정치권 인사는 "이 전 총리는 당이 177석이라는 국민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당대표에 나설 명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더라"며 "이것 말고도 여러 지점에서 걸리는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특히 친문 진영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를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전 총리나 정 총리 둘 다 친문 핵심의 흔쾌한 지지를 확보한 상태는 아니다"라며 "친문들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에 따라 차기 대선 경쟁 구도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