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곳에 많이 기부하고 싶지만 '꼭 언니를 이겨야겠다' 그런 건 아니에요."(고진영)

"이야기 많이 나누면서 서로 잘 알아가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박성현)

고진영(왼쪽)과 박성현이 24일 현대카드 슈퍼매치에서 티샷하는 모습. 둘은 이날 접전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고진영은 밀알복지재단, 박성현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각각 상금 5000만원을 기부했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고진영(25), 직전 1위이자 현 3위 박성현(27)은 일대일 맞대결을 앞두고 덕담만 나눴다. 24일 인천 스카이72 골프 앤 리조트(파72·6464야드)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매치 고진영 vs 박성현' 직전 기자회견에서 "무섭게 하지 말고 재미있게 하자" "편안하게 하자"고 했다. 마주 서서 노려보는 사진 포즈를 부탁받았지만 웃음부터 터졌다.

고진영이 "상금 반반씩 가져가면 좋겠다"고 하자 박성현은 "그거야말로 완벽한 시나리오"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막상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서자 둘 다 눈빛이 싹 달라졌다.

현재 한국 최고의 여자 골프 스타이자 세계 여자 골프를 이끌어가는 두 선수의 격돌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무관중으로 열려 팬들은 열렬한 화상 응원을 펼쳤다. 둘은 2014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나란히 데뷔했고 10승씩 똑같이 쌓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6승(고진영)과 7승(박성현). 신인상(2017 박성현, 2018 고진영)과 올해의 선수상(2017 박성현, 2019 고진영)도 차지했다. 박성현의 세계 1위 자리를 지난해 고진영이 이어받았다. 후원사와 매니지먼트사도 같다.

홀마다 걸린 상금을 따내는 스킨스게임 형식으로, 총상금 1억원은 밀알복지재단(고진영)과 서울대 어린이병원(박성현)에 코로나 성금으로 전달됐다. 홀 상금은 200만원에서 출발해 뒤로 갈수록 1000만원까지 늘어났다. 자선 이벤트라는 취지가 무색할 만큼 뜨거운 승부가 펼쳐졌다. 1번 홀(파4) 박성현이 먼 거리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기선 제압하며 출발했다. 하지만 고진영이 3~5번 홀을 연속 앞서 무승부 2번 홀(파4) 상금까지 가져갔다. 고진영의 퍼트가 조금씩 빗나가자 이번엔 박성현이 6~8번 세 홀 연속 승리했다.

캐디와 쾌활하게 이야기하며 긴장감을 떨치는 고진영과 달리, 박성현은 내내 입을 꽉 다문 채 혼자 몰입했다. 고진영이 10번 홀(파4) 버디를 잡아내 무승부 9번 홀(파5) 상금까지 가져가자, 박성현은 12번 홀(파3)에서 찬스를 꺼내들었다. 자신이 지정한 홀에서 이길 경우 상금 10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이 홀에선 승부가 나지 않았고, 13번 홀(파4)에서 이긴 고진영이 이월 상금까지 2400만원을 한꺼번에 받았다.

4000만원 대 1200만원으로 격차가 벌어지자 박성현이 반격했다. 14·15번 홀을 연속으로 따내더니, 고진영 찬스 홀인 17번 홀(파3) 버디를 잡아내 뺏긴 찬스를 되찾아왔다. 16번 홀(파5) 이월 상금까지 2600만원을 한 번에 거머쥐면서 4000만원 대 5000만원으로 역전했다. 하지만 고진영은 가장 많은 상금 1000만원이 걸린 18번 홀(파4)에서 5m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기어이 무승부를 만들고 경기를 끝냈다. 5000만원 대 5000만원.

"짜고 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진짜 아니거든요."(고진영) "원한 대로 최고의 시나리오가 이뤄지니 신기해요."(박성현) 향후 국내외 대회 출전 계획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는 두 선수는 "오늘 경기에 집중하느라 못 나눈 이야기는 새로 이사한 고진영 집들이에서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