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 밀어붙인 검찰청법 개정 문제로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는 외신을 보면서 검찰 길들이기는 '정권의 본능'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정안 핵심은 고등검찰청 검사장(고검장)의 정년(63세)이 다 돼도 내각(內閣)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의 정년은 1년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올 1월 아베 총리는 정년이 일주일 남은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장의 정년을 6개월 연장했다. 내각과 자민당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자, '친(親)아베' 검사로 통하는 그를 몇 개월 뒤 차기 검사총장(검찰총장)에 앉히려고 이렇게 했다. 위법 논란이 일자 '우리 편'을 검찰 수장에 계속 심을 수 있게 아예 검찰청법을 개정하려 한 것이다.

이 사건에서 눈길이 갔던 건 마쓰오 구니히로(77) 전 검사총장이 전직 검찰 간부들과 함께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법무성에 냈다는 부분이었다. 의견서는 신랄하고 거침없었다. 그는 "아베 총리의 구로카와 고검장 정년 연장은 내각의 법률 해석으로만 법률 운영을 하겠다는 선언"이라며 "프랑스 루이 14세의 '짐은 국가다'라는 중세의 망령과 같은 말"이라고 했다. 이어 "법이 종료되는 곳, 폭정이 시작된다는 경고를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찰 인사에 정치권력이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정권 뜻에 맞지 않는 검찰의 힘을 잘라내려는 의도로 간과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한국 상황은 일본보다 더 지독하다. 청와대는 올 초 자기들을 수사한 '윤석열 사단' 검사들을 두 차례 인사로 요직에서 모조리 도려냈다. 노골적 살기(殺氣)가 느껴지는 인사여서 '대학살 인사'로도 불린다. 빈자리를 말 잘 듣는 '친문(親文) 검사'들로 채워 사지를 잃은 윤 총장을 포위했다. 이후 검찰은 온순해지고 있다. 정권을 겨냥한 수사는 확실히 힘이 풀렸다. 마쓰오 전 총장이 반대한 '정권 뜻대로 움직이는 검찰'에 근접한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엔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법조계 원로 한 명이 없었다. 전직 검찰총장들은 현 정권을 수사한 후배들이 '학살'당할 때 숨어 있었다. 그 많던 왕년의 강골 검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잘나갔던 특수·공안·기획통 검찰 간부 출신들도 입 다물고 구경했다. 모든 법리에 통달했다는 전직 대법관들은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베 총리의 검찰청법 개정은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한국이었다면 통과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의석 수 문제가 아니다. 두려운 권력 앞을 막고 서서 바른말을 해 다른 사람들의 용기에 불을 붙이는 법조계 원로가 한국엔 없기 때문이다. 77세 마쓰오 전 총장의 반대 의견서는 이런 한국 법조계의 깊고 오래된 병폐를 비추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