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 내 반(反)정부 활동을 처벌할 수 있는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중국은 수차례 홍콩보안법을 만들려 했으나,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실패했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을 틈타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표면적으로 유지돼 온 일국양제(1국가 2체제) 원칙이 허물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이에 대해 "강력한 대처"를 경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코로나 책임론 공방 등으로 악화일로인 미국과 중국이 홍콩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인대 나란히 참석한 홍콩·마카오 행정장관 캐리 람(오른쪽) 홍콩 행정장관과 호얏셍(가운데) 마카오 행정장관이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전인대에는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처벌할 수 있는 홍콩 국가보안법 초안이 제출됐다.

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에서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홍콩 안전 보호를 위한 법률 제도와 집행 기구 수립' 초안을 제출했다. 왕천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은 이날 제안 설명에서 "홍콩에서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방지·처벌하고, 어떤 외부 세력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홍콩 정부의 사무에 관여하는 것을 막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홍콩 내에 관련 기관을 설치하고, 홍콩 시민을 대상으로 국가 안전 관련 교육을 실시하며, 홍콩 정부가 이를 중국 중앙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구체적인 처벌 수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2008년 마카오에서 통과된 국가보안법은 법을 위반한 사람을 최대 징역 30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 왕 부위원장이 법안의 주요 내용을 읽자 시진핑 국가주석 등 3000명 가까운 전인대 대표단이 박수를 쳤다.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홍콩 법률은 기본적으로 홍콩 의회가 제정한다. 하지만 국방·외교 등 홍콩 정부 업무 범위 밖의 법률에 대해서는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홍콩 정부와 협의해 추가·삭제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그간 홍콩 정부와 의회를 통해 국가보안법을 도입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지난해 대규모 반중 시위가 6개월간 이어지고 시위대가 중국 국기를 불태우고 신화통신 홍콩지사 등 중앙 기관을 공격하자 직접 입법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안에서 '외부 세력의 개입 방지'를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홍콩 시위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 전인대가 직접 홍콩 관련 법안을 만든 것은 홍콩 반환 이후 처음이다.

그간 홍콩의 자치를 강조해온 미국은 강한 대응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미시간주로 떠나기에 앞서 기자들이 홍콩보안법과 관련해 질문하자 "만약 그것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 문제를 매우 강하게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8월 홍콩의 민주화 시위 당시 중국 정부가 병력을 홍콩과 인근 지역으로 접근시키는 상황에서도 "홍콩 문제에 대해 왜 나와 미국 탓을 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며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일방적이고 제멋대로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를 규탄한다"며 "베이징 당국은 형편없는 법안을 재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 민주당 크리스 밴홀런 상원의원과 공화당 팻 투미 상원의원이 홍콩보안법 제정에 관여한 중국 관리와 단체를 제재하고, 이들과 거래하는 은행을 처벌하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 법안이 통과돼 시행될 경우 중국 지도부의 해외 금융거래 자체가 막히고 중국 은행들이 제재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