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1일은 LG 팬들에게 기억이 남는 날이 될 것 같다. LG는 이날 삼성을 맞아 4명의 투수가 등판했다. 놀랍게도 첫 세 투수는 모두 만 20세 이하였다.

선발 이민호가 만18세 8개월 21일, 구원으로 나온 김윤식이 20세 1개월 18일, 정우영이 20세 9개월 2일이었다.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LG가 첫 세 투수를 만20세 이하 투수들로 채운 건 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무리로 나온 이상규 역시 만23세 7개월 1일의 ‘영건’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눈부신 무실점 호투로 LG의 2대0 승리를 이끌었다. LG의 미래들이 한 경기를 책임진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채은성이 1회초 투런 홈런으로 결승점을 뽑았다.

21일 생애 첫 승을 거두고 기념구를 손에 쥔 이민호.

선발 이민호는 류중일 감독이 당초 ‘비밀병기’라고 밝혔던 선수다. 개막을 앞두고 4선발로 낙점받은 송은범이 6일 두산전에서 2와3분의1 이닝 동안 5실점으로 무너지면서 류 감독은 투수 로테이션을 재편성했다. 윌슨·켈리·차우찬·임찬규를 고정으로 놓으니 나머지 선발 한 자리가 문제였다.

류중일 감독은 “6명의 투수로 선발 로테이션을 꾸리려 한다. 5선발은 정찬헌과 이민호가 번갈아 맡을 예정”이라며 “일종의 5.5선발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12년 만에 선발로 돌아온 정찬헌은 허리 수술 여파로 등판 후 충분한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16일 키움전에서 7이닝 3실점으로 호투한 정찬헌은 다음 날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류 감독은 20일 “정찬헌에게 휴식을 주면서 그 공백을 루키 이민호로 메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올 시즌부터 LG 유니폼을 입은 고졸 루키 우완 투수 이민호는 자체 청백전과 연습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만18세라 당장 활약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21일 생애 첫 1군 선발 등판에서 5와3분의1 이닝 동안 안타를 하나만 맞고 실점을 내주지 않는 눈부신 피칭을 선보였다.

투구 수는 86개(스트라이크 51개). 직구 최고 구속은 151km까지 나왔다. 삼진은 두 개를 빼앗았다. 긴장하지 않고 씩씩하게 공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회말엔 이학주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뒤 직접 견제구로 그를 아웃시키며 스스로 위기에서 탈출했다. 이민호가 6회말 원아웃을 잡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류중일 감독은 ‘아빠 미소’로 그를 맞았다.

역투하는 김윤식.

루키 이민호의 뒤를 이어 등판한 선수 역시 신인 김윤식이었다. 좌완 김윤식은 6회말 구자욱을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처리하고 생애 첫 홀드를 기록했다. 다음은 작년 신인왕 정우영의 차례. 정우영은 2와3분의1 이닝 동안 8타자를 상대해 안타 하나만 맞고 무실점으로 막아 시즌 두 번째 홀드를 챙겼다.

21일 첫 세이브를 거둔 뒤 공을 쥐고 포즈를 취한 이상규.

9회말엔 이상규가 등판했다. 이상규는 선두 타자 구자욱에게 볼넷을 허용했지만, 다음 타자 이원석을 병살로 처리했다. 그는 이어 이학주까지 2루수 땅볼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올해 첫 세이브.

류중일 감독은 “이민호의 첫 선발승을 축하한다. 너무너무 잘 던졌다. 김윤식의 첫 홀드, 이상규의 첫 세이브도 축하한다. 고우석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우리 불펜들이 정말 잘 막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LG 팬들 역시 유망주들의 활약에 입이 귀에 걸렸다. 개막을 앞두고 4~5선발이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LG는 이민호가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불펜에서도 고우석이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정우영과 이상규 등 ‘영건’들이 그 자리를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 1994년 이후 26년 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LG는 9승5패로 NC(12승2패)에 이어 2위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