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소설가

나는 우연을 잘 안 믿는 편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일도 있었겠지만, 살면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라곤 도통 없었다. 어쩌면 나는 우연을 어떤 '행운'에 가까운 것이라 여겨왔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거나, '우연히' 산 로또가 1등에 당첨되거나 하는 것처럼.

그러다 좋아하는 북카페에서 즐거운 일이 있었다. 두 번째 책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시작돼 5개월쯤 그곳에 가지 못하던 중이었다. 근처 목공소에 갔다가 카페에 들렀다. 겉으로는 문이 닫혀 있는 듯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서니 넓고 밝은 공간이 펼쳐졌다.

나는 안쪽에서 책을 읽고 있던 사장님께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자 사장님이 고개를 들었다. 안 간 지 꽤 된 데다 마스크를 하고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 너무 오랜만이죠." 나는 그곳을 떠올리며 산 흰색 꽃과 책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사장님이 책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어? 저 지금 이거 읽고 있는데!"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멀찍이 떨어져 근황을 나눴다. 그리고 대여섯 번쯤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서로를 신기해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죠?" "신기하지 않나요?" "혹시 텔레파시를 받으셨나요?" 보고 싶어 찾아간 사람이 내가 쓴 글을 읽고 있고, 책을 읽는데 그 책을 쓴 사람이 걸어 들어오는 순간. 별거 아닌 일인데도 오래 기분이 좋았다.

몇 년 전, 우연히 어떤 자리에 갔다가 안 좋은 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자리에 간 나를 탓했다. 그 일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자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사는 수밖엔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지만, 북카페에서의 작은 우연 덕분에 내 두려운 삶 속의 소소한 기쁨들도 그렇게 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 이후로 써본 적 없던 '텔레파시'란 단어를 다시 쓰게 되는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