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주역으로 한국군의 대표적인 작전통이었던 류병현(96·사진) 전 합참의장이 21일 오전 서울 광장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류 전 의장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일본 도쿄 물리학교 재학 중이던 1945년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광복을 맞았다. 1948년 육사 7기로 임관했는데 당시 중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6·25전쟁 때는 미 25사단 연락장교 등으로 참전했다. 1951년 미 기갑학교 유학 후 귀국해 기갑병과 창설 주역이 됐고 육군 기갑학교장도 지냈다.

5·16 군사정변 후 군정 시절 최고회의 위원으로 있다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15사단장을 거쳐 채명신 장군의 뒤를 이어 주월 맹호사단장에 임명,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귀국 후 합참 작전기획국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등을 지내면서 예비군 창설과 대간첩 작전을 주도했다.

해박한 군사 지식과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1968년 제1차 한·미 국방장관 회의 때부터 대미 군사 외교 일선에서 활약했다. 1974년 합참본부장 및 대간첩대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한·미 안보동맹사에 한 획을 그은 한미연합사 창설을 주도했다.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될 때 초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취임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시절인 1979년 10·26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미국에 가 있던 위컴 사령관을 대신해 미국과 협의, 위기 관리를 했다. 합참의장 시절이던 1981년 초 방미해 당시 내란 음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감형을 조건으로 전두환-레이건 정상회담을 성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해 6월 전역한 뒤 주미 대사에 임명, 4년여 동안 재임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선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추진되자 투병 중임에도 한미연합사 해체에 반대하며 전작권 전환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무성화랑무공훈장, 은성화랑무공훈장, 충무훈장, 월남입성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동북아 안보의 주역으로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하셨으며 우리 모두는 류 장군님을 진정으로 잊지 못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장례는 합참장(葬)으로 치러지며 25일 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양정희씨와 4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특실, 발인은 25일 오전 7시 30분. (02)3010-2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