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석순 전주대 가정교육과 교수·한국아동가족복지학회 부회장

미래 사회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상황처럼 답이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도전이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사회 전반에서 코로나 이후의 변화에 대응할 시점이다. 그 하나는 '가족의 변화'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 재택근무 확대, 등교·개학 연기 등으로 어른도 아이도 '집'이라는 공간에 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가족의 변화에서 우리는 위로받고 있는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도망가고 싶은가.

모두가 동일한 것은 아니겠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적잖은 사람이 갑자기 너무(?) 많이 증가한 '가족과의 시간'으로 맞닥뜨린 '가족의 변화'에 당황하고 있다. 물론 초기에는 식사조차 제대로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시간을 열렬히 환영했겠지만 이것이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불화' '코로나 가정 폭력' '코로나 이혼' 등 부정적 반응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어떤 회사는 되도록 재택근무를 하고 싶지 않다는 근로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활약할 미래 사회는 재택근무 및 가상현실에 의한 사이버 강의 확대로 마치 농경 사회에서처럼 가족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조만간 다가올 '미래 가족'을 미리 경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양진경

하버드대학의 베일런트(G. Vaillant) 교수는 생애 전반에 걸쳐 행복을 유지했던 사람들을 장기 추적·관찰한 결과 그들이 '성숙한 방어기제'와 함께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대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본인의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생애 전반에서 가장 길게 유지되는 대인 관계는 '가족과의 관계'이다. 그런데 이 가족과의 관계가 늘 안정적이고, 특히 그 관계에서 가지는 경험이 늘 행복한가. 코로나로 인해 생겨난 뜻밖의 시간은 가족과의 시간이 언제나 행복하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데 저절로 행복해질 수 없음을 우리에게 경험시키고 있다. 최고의 기쁨을 주는 관계일 수 있는 부부 관계가 가장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관계로 변질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부모가 되면 저절로 모성애나 부성애가 생긴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음을 부모가 되어 본 사람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왜 그런가. 가족생활의 행복은 인간의 '본능'으로 저절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 즉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개인의 가치관, 사회의 규범, 사상, 기술 등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학습'의 결과물이다. 배우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우연도 있겠지만, 배운다면 의식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더 잘할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더욱 향상된 삶을 지향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 진행된 인간 행복을 규명한 여러 연구는 일의 세계에서의 성공을 위해 시간을 들여 미리 배우고 준비하듯이, 인간의 행복에 중요한 요소인 건강한 대인 관계 형성과 유지를 위해서도 미리 준비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정의 교육 기능과 대가족 및 탄탄한 지역사회의 공동 육아를 통해 부모 됨을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었던 전통 사회와 달리, 현대사회는 부모 됨을 배울 기회가 드물다. 부모가 되기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이유이다. 또 어느 한 사람(주로 여성인 어머니)의 일방적 희생을 담보로 한 전통 사회의 부부와 가족생활의 규범을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해서도 안 된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의 가족생활에 대한 학습이 필요한 전환기이다.

다행히 우리 교육에서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를 이해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성찰하여 '주도적인 삶의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생활 역량'을 기르는 게 목표인 '생활교과'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대학 입시의 수능 과목으로 돼 있지 않아서 '생활교과'를 선택하는 고등학교가 점차 줄고 있다. 교육 당국은 입시 위주의 교육 개혁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행복한 인간으로 청소년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서 어떤 철학을 강화하고, 어떤 교과의 선택에 방점을 둘 것인지 숙고해 이를 교육정책으로 제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