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즈 팬들에게 저는 애증의 선수라는 걸 잘 압니다. 팀이 16연패를 할 때도, 우승을 두 번 차지할 때도 전 늘 타이거즈와 함께였습니다. 타이거즈 선수로 꿈꿔왔던 기록을 이루게 돼 영광입니다.”

19일 롯데전에서 타격하는 나지완의 모습.

19일 프로야구 KIA-롯데전(광주 챔피언스필드)이 끝나고 만난 나지완(35·KIA)은 대기록 달성에도 차분한 모습이었다. 이날 그는 1회말 2사 1·2루 상황에서 우측 담장을 넘겼다. 개인 통산 207번째 홈런으로 김성한(62) 전 KIA 감독이 보유한 KIA 프랜차이즈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김성한 전 감독은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4시즌 동안 해태에서 뛰며 207개의 홈런을 때렸다. 김 전 감독처럼 ‘원 클럽 맨’인 나지완은 13년 만에 이를 달성했다. 2008년 KIA에 입단한 나지완은 올해까지 팀을 옮기지 않고 활약 중이다. 그는 홈런 하나를 더 치면 KIA 유니폼을 입고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사나이가 된다.

“제가 홈런 200개를 넘게 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팬들이 많아요. 아무튼 저는 이 기록을 통해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어서 최다 기록을 세워 홀가분해지고 싶어요.”

나지완의 지난 시즌은 최악이었다. 부상과 부진으로 56경기 출전에 그치며 타율은 처음으로 1할대(0.186)를 찍었고, 홈런(6)과 타점(17)도 데뷔 이후 가장 적었다.

2019년의 아픔을 잊으려 절치부심한 나지완에게 맷 윌리엄스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MLB 레전드이자 KIA의 새 사령탑인 윌리엄스는 나지완을 붙박이 주전으로 활용했다.

“작년만 해도 선발 오더가 나올 때면 거기에 온통 신경이 다 가 있었어요. 경기에 나갈지 안 나갈지 모르니까 늘 불안했죠. 하지만 올 시즌엔 윌리엄스 감독님이 믿고 내보내 줘서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이 승리 후 나지완과 주먹을 부딪치고 있다.

나지완은 어린 시절 윌리엄스 감독을 TV에서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윌리엄스는 MLB 통산 378홈런 1218타점 1878안타를 자랑하는 전설적인 타자. 그런 레전드가 자신을 지지하고 중요한 임무를 맡긴 것에 대해 나지완은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주로 지명타자로 나섰던 그는 올 시즌엔 주전 좌익수로 활약 중이다.

“수비가 약하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최근엔 수비 잘한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많이 듣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러다 보니 초조함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나지완은 시즌 개막 이후 5경기 동안 홈런이 없었다. 초반 부진에 조금 예민해졌지만,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마음을 편하게 한 결과 최근엔 장타가 자주 나오고 있다. 나지완의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317, 3홈런 9타점이다.

수비에선 풀타임 외야수로 활약하는 것이 올 시즌 목표다. 무엇보다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 윌리엄스 감독은 크게 이기더라도 주전을 빼는 경우가 적어 출전 시간이 많다. 다행히 최근 몸은 확실히 가벼워졌다.

“수비도 하느라 정말 집중했더니 경기가 끝나도 긴장이 풀리지 않아 입맛이 없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최근 3~4kg이 빠졌습니다. 벨트를 3~4칸 줄였다니까요. 잘라서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파워가 줄지는 않았을까. 나지완은 “걱정하지 마라”며 “힘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나지완은 19일 경기에 앞서 몸을 풀 때 챔피언스필드 한구석에서 큰 개구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개구리가 복을 가져다준 것 같다”며 “그 기운으로 KIA 프랜차이즈 최다 홈런도 어서 깨고 싶다”고 했다.

5월 19일은 나지완의 35번째 생일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나이가 많은 줄 안다”며 “그래도 팀에서 고참급인 것은 사실이다. 후배들에게 좋은 조력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지완은 인터뷰 내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KBO리그 최다 우승팀의 역대 최다 홈런 주인공이 곧 될 그였지만, 쉽게 들뜨지 않았다.

“호들갑 떨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려고요. KIA 유니폼을 입고 300홈런을 칠 그날을 그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