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성이 '2020 외교청서'에서 "한국은 일본에 중요한 이웃 나라"라는 표현을 3년 만에 부활시켰다. 또 2018년 발생한 '초계기-레이더 갈등' 부분을 삭제했다. 하지만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은 되풀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24일(현지시각)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초계기-레이더 갈등'은 '일본 자위대 초계기가 우리 구축함을 위협 비행했다'는 우리 측 주장과 '우리 힘정이 일 초계기를 향해 공격용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일본 측 주장이 맞서 진실 공방으로 번진 사건이다. 작년 일본 외교청서는 이를 양국 관계를 악화시킨 사례로 거론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번에 이 문제를 뺐는데, 그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일각에선 "지난해 말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등 일부 진전된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일본은 2017년까지 외교청서에서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후 2년 연속 이 표현을 생략했다. 지난해엔 양국 관계가 징용 배상 문제 등으로 1965년 수교 후 최악으로 치닫자 "한국 측에 의한 부정적인 움직임이 잇따라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도 했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과거 표현을 살린 것이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지난 1월 아베 총리가 중의원 연설에서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는 표현을 3년 만에 사용했는데 외교청서도 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위대 초계기의 위협 비행 문제를 기술하지 않은 것도 '더 이상 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아베 내각은 징용 관련 일본 기업들에 대한 압류 재산 현금화를 한·일 관계의 마지노선으로 보는데, 이것이 일단 멈춰 있는 만큼 확전 자제 기조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아베 내각은 현재 미숙한 코로나 대응으로 곤경에 처한 상황"이라며 "외교 이슈가 돌출해 국정에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는 기조"라고 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연설에서 일본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자제하고, 그해 말 15개월 만의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된 점을 일본 측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다만 "징용 문제 등 한·일 갈등 해결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가 바뀌었다고 보긴 아직 어렵다"고 했다.

일본은 이번 외교청서에서 독도, 징용 배상, 위안부 문제 등 양국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특히 독도에 대해선 "한국이 경비대를 상주시키며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등 대한(對韓) 수출 규제에 대해선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물자와 기술의 무역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지역 안보를 고려해 판단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우리 외교부는 이날 오전 11시쯤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 일본 총괄공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대변인 논평을 통해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의 즉각 철회를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