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儒巾)을 쓴 유생들이 긴 종이를 잡고 둘러섰다.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감상 중이다. 한 사람은 침이 튈까 봐 부채로 앞을 가렸는데 시선은 종이에 꽂혀 있다. 풍속화의 대가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 이후)가 그린 '그림 감상'〈사진〉이다. 오다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종이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아 유생들이 시험 답안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고 했다.

지난 6일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보물 527호)을 전시한다. 단원풍속도첩은 국내외 전시에 출품 요청이 끊이지 않는 데다 작품 보존 때문에 한 번에 여러 점을 감상하기 어려웠다. 이번 전시에선 '씨름' '무동' '활쏘기' '논갈이' '노중 풍경' '베짜기' 등 7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밝은 표정으로 논을 가는 농부,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어린아이 등 조선 후기 생업 현장과 놀이, 휴식 등을 스냅사진 찍듯 포착했다. 길거리에서 부딪힌 일행을 묘사한 '노중 풍경'에선 맞은편의 앳된 아낙을 부채 너머로 훔쳐보는 젊은 선비의 야릇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번 7점은 9월 중순까지. 이후 두 차례 교체 전시를 통해 내년 5월까지 단원풍속도첩 25점 중 19점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