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원 사회부 기자

최문순 강원지사는 스스로를 '불량 감자'라고 부른다. 강원도 특산품인 감자 중에서 제일 못생긴 감자를 자처한다. 도(道)를 위해서는 어떤 험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각오가 담겼다. 불량 감자가 이번에는 어느 도지사도 보이지 못한 소신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도청 광장에서 '지역 경제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며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말고, 펑펑 쓰자. 저도 기부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부하면 국고로 귀속될 뿐, 지역 경제 회생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받아서 써주셔야 지원금 지급 취지가 살고 진정한 애국이 된다"고 했다. "강원도를 위해 펑펑 써서 코로나로 붕괴된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그의 주장에 행사장에서 박수가 터졌다.

최 지사의 발언이 알려지자 도민들 사이에서는 '불량 감자의 사이다 발언'이라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재난지원금 기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1호 기부'로 앞장선 사안이다. 대통령이 나서니 공직자들이 따르지 않기가 어렵다. 곧이어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정부 부처 수장들이 잇따라 기부하겠다고 했다. 떠밀리듯 지원금을 내놓는 '관제 기부'의 바람은 기업에까지 불어닥쳤다. 5대 그룹 임원을 비롯해 5대 금융그룹도 기부의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예상대로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집권 여당의 집단 움직임에 여당 자치단체장은 물론 야당 자치단체장까지 기부를 고민하고 있다. 지원금을 소비해 엉망이 된 경제를 살리자는 것은 애초 지원금을 마련한 취지에 부합한다. 그러나 각종 사업 추진을 위해 정부와 집권 여당의 힘을 빌려야 하는 자치단체장들로선 대통령의 뜻에 맞서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소속인 최 지사가 "기부하지 말고 쓰자"고 나선 것이다. 도민을 위한 소신이었다. 강원도는 72만 가구에 재난지원금 4345억원이 지급된다. 모든 가구가 재난지원금을 기부하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할 경우 이 돈이 고스란히 지역 경제에 스며든다. 전체 인구 2만2375명인 강원 양구군의 일년 예산 3850억원보다 495억원이나 많다.

최 지사의 행동은 여러 국민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온라인상엔 '백번 옳은 말씀과 행동이다' '재난지원금 소비가 진정한 기부다' '합리적인 지적이다' 등 그를 향한 지지가 쏟아지고 있다. 재난지원금 기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여유가 있다면 충분히 기부할 수 있으며, 그 의사도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고를 털어 마련한 지원금이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 것도 중요하다. 등 떠밀기식 기부보다 소비를 통해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다. 불량 감자 최문순을 강원도민들이 으뜸 감자로 여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