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다면 허락할 텐데/ 넌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거야?"('세이 소' 가사 일부)
이제 남자들은 제대로 말 안 하고 우물쭈물거려도 혼난다. 미국 힙합 래퍼 도자 캣과 니키 미나즈가 함께 부른 '세이 소(Say So)'가 지난 12일(현지 시각) 발표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빌보드 역사상 여성 래퍼가 함께 부른 노래가 정상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 여성 아티스트 간 협업 곡으로도 역사상 여섯 번째다. 도자 캣은 지난주 트위터에 "내가 만약 1위를 한다면 가슴 한번 제대로 보여주겠다"며 도발했고, 정상에 오르자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가 여러분을 속였다. 내 가슴을 보여주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계 가요시장 꽉 잡은 여성들
'센 언니'들이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번 주 빌보드 2위도 여성 래퍼 메건 더 스탤리언이 힙합 여왕 비욘세와 함께 부른 '새비지'. 이들은 "난 제멋대로인 여자/ 우아하고 고급진데 또 난장 피우는 건 전문이야"라며 상대의 기를 꽉 눌러준다.
힙합계뿐 아니다. 영국 출신 팝가수 두아 리파도 눈꼬리를 올리고 손톱을 짙게 칠한 채 이번 주 빌보드 6위에 오른 '돈트 스타트 나우'를 부른다. 올해 그래미 시상식이 낳은 스타 빌리 아일리시도 뒤지지 않는다. 원색의 헤어스타일에 중성적인 옷을 입고 "내가 원할 때만 할 거야/ 내가 좀 시니컬하잖아?(배드 가이)"라고 부르면 19세 그녀를 "언니!"라 외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여성 팬덤을 잡아야만 롱런이 가능한 대중음악계 특성에다 여성 힙합의 황금시대까지 도래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정치적 올바름(PC)으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시대인 것도 한몫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8일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 공간이었던 힙합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며 "지금 우리는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지원하는 성공적 여성 래퍼가 많은 시점에 와 있다"고 했다.
◇K팝도 청순함 벗고 '센 언니'로
K팝 시장도 마찬가지다. 귀여움과 청순함의 대명사였던 국내 걸 그룹들도 센 언니 이미지를 장착하며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 대중음악 관계자는 "귀여움이 먹히는 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시장"이라며 "북미 등 서구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블랙핑크'가 북미권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걸크러시 콘셉트로 지난해 북미 최대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에서 공연을 한 블랙핑크는 '뚜두뚜두(11억뷰)' '붐바야·킬디스러브(8억뷰)' 등 유튜브에서 5억뷰 이상 뮤직비디오가 5편이나 된다. 모두 센 노래다. 걸크러시의 원조 레이디 가가와 함께 부른 '사워 캔디'도 이달 말 공개된다.
세계시장에서 이들을 바짝 따라잡는 신예 걸그룹 '(여자)아이들'도 데뷔 때부터 '야성적 카리스마'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번 타이틀곡 '오 마이 갓'은 걸 그룹 최초 아이튠스 58국 1위를 한 데 이어 리퍼블릭 레코드와도 계약하며 미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센 언니 그룹의 맏언니 격인 마마무의 화사도 두아 리파와 듀엣곡 '피지컬'을 발표하며 해외 진출 발판을 닦았다. 마마무 멤버 솔라는 이번 솔로곡 데뷔 선공개 영상에서 '삭발' 분장을 공개해 센 언니의 정점을 보여줬다. 섹시하면서도 강한 이미지의 청하도 미국 3대 에이전시인 ICM과 계약하며 미국 진출 준비를 시작했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앞세웠던 국내 여성 가수들이 투애니원 등의 성공 이후 파워풀, 개성파 등으로 그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