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주필

이번 총선에서 여당과 야당의 득표 차는 8.5%포인트(243만명)이다. 단순 계산으로 243만명 중 122만명이 마음을 바꾸면 선거는 뒤집힌다. 122만명은 많은 숫자일까 적은 숫자일까. 서울 지역구에 출마했던 분은 “실제 선거에 나가보면 유권자 1만명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진다”며 “그것이 가능하려면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122만명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좋은 후보를 내고, 공약을 잘 만드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나라 전체에 부는 바람의 풍향, 세기, 온도, 습도가 달라져야 한다. 한마디로 계절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진보 좌파의 계절이다. 필자는 이 계절이 당분간 더 갈 것으로 전망한다. 보수 우파에 계절을 바꿀 만한 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3040세대 몇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다. 생각들이 비슷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현재 야당은 인물이나 정책에 앞서 태도와 자세에서 지고 들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태도와 자세가 지속적으로 대중을 자극하면 그에 대한 사회적 정서가 형성된다. 한번 형성된 정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지금 야당에 대해선 비호감 정서가 장마전선처럼 형성된 상태다.

3040이 야당에 대해 갖고 있는 비호감 정서의 첫머리에 '박근혜'가 있었다. 3040과 박근혜는 그야말로 대척점에 서 있는 듯했다. 박근혜 탄핵 때 총리가 야당 대표가 돼 총선에 나왔으니 3040의 표를 얻기엔 원천적인 문제가 있었다. 3040은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나온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에서 태극기를 들고 등산복을 입은 노령층을 보면 반감이 먼저 생긴다고 했다. 미국 국기, 이스라엘 국기를 든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일본에 대해선 아주 얄밉다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 정권이 시도때도 없이 친일파 타령을 하는 것은 이를 읽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3040은 여당이 세월호를 '너무 우려먹는다'는 걸 안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막말을 하는 야당이 더 싫다고 했다. 이런 상황인데 투표일 직전 야당에서는 "3040은 논리가 없다"에 더해 '세월호' 논란까지 나왔다. 3040표를 내쫓은 것과 같다.

여 7 야 3으로 기운 3040세대의 마음이 최소한 6대4 정도로만 바뀌어도 선거는 박빙이 된다. 야당이 3040의 행태에 동의할 수 없어서 그들과 따로 가고 싶으면 그래도 좋다. 다만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3040세대는 야당의 말실수, 막말, 구태 등은 시시콜콜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지만 현 정권의 국정 차원 실정(失政)에 대해선 잘 모르거나 큰 관심이 없었다. 울산 선거 공작은 사건 자체를 잘 몰랐고 소득 주도 성장이나 탈원전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친정권 일색인 언론 환경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론 야당 자체의 문제인 듯했다. 3040은 김정은을 혐오했고, 대다수가 문재인 정권 경제에 낙제점을 줬다. 하지만 문재인은 북핵이 어찌 됐든 북한과 잘 지내려고 하고, 경제를 망치든 어쨌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 나눠주려고 한다는 게 분명하다고 했다. 그런데 야당은 다 반대만 할 뿐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실수' 같은 것만 부각된다.

실제 지난 3년 동안 야당엔 정체성을 보여줄 정책이 없었다. 게을렀기 때문이 아니라 '보수 우파적 가치(價値)'라는 우물이 말랐기 때문이다. 야당 당선인 중 보수 우파적 가치에 대해 국민을 자신 있게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 사람을 움직이는 원초적 동력은 '배 고픔'과 '배 아픔'이다. 보수 우파는 한국의 '배 고픔'을 해결했다. 기적적 업적이다. 그런데 '배 고픔'이 지나면 '배 아픔'의 계절이 온다. 계절이 바뀌었는데 계속 '배 고픔'적 시절 얘기를 하니 대중이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배 아픔'의 해결은 진보 좌파의 전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모두 보수 우파가 만든 제도다.

보수 철학은 어렵지 않다. 야당의 김미애 당선인은 여공 출신으로 야간대학을 다녀 변호사가 됐다. 아이 셋을 입양했거나 데려와 키운다. 그는 “나는 보수의 가치를 신뢰하고 자유를 존중한다”며 “열심히 일해서 내가 잘살고, 그걸로 어려운 사람 돕자는 게 내 생각이다”라고 했다. 이것이 보수의 처음이자 끝이다. 보수는 ‘국민 각자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그것으로 경제 사회의 창조와 발전을 이끌되 공동체의 규범을 벗어나는 방종은 규제하자는 정신’이다. 보수는 ‘자유’ ‘열심’ ‘일’ ‘잘살기’ ‘돕기’ ‘공동체 지키기’다. 이 가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성실하게 국민을 설득하면 겨울에 떠난 3040세대는 봄철에 제비 돌아오듯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당 당선인들은 국회 개원 전에 전성철 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이 쓴 ‘보수의 영혼’을 읽어봤으면 한다. 쉽게 쓴 책이다. 보수 가치의 우물이 다시 채워지면 국민이 물을 길어 목을 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