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자회사 열 곳에 전남 나주 한전공대 설립 자금으로 "다음 달까지 216억원을 납부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한전의 1차 출연금 600억원의 36%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전은 작년 말 사장단 회의에서 이 같은 분담금 비율을 정했다고 한다. 2025년까지 한전공대 설립·운영에 드는 8000억원 가운데 자회사 열 곳이 떠맡은 돈이 3000억원 가까이 된다. 지난해 한전은 11년 만에 최대 영업 손실을 냈다. 살림이 엉망이 된 집안이 명품 살 돈 내놓으라고 자식들 팔 비트는 식이다.

한전공대 나주 설립은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용 공약이었다.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이번 총선 나주 지역 후보자로 나서 당선됐다. 그런데 교육부는 한전공대가 개교하는 2022년에 전국적으로 대학 정원 미달이 8만5000명이고 2024년엔 12만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학 연쇄 파산이 예고된 것이다. 전국 대학 4분의 1이 5년 안에 문 닫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무슨 대학 신설인가. 대통령 공약이면 어떤 불합리한 일도 해도 되나.

이미 전국 대학에 에너지 관련 학과가 다 있다. 에너지 관련 학과·학부를 갖춘 이공계 특성화 대학도 다섯 곳 있다. 한전은 이미 2012년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도 설립했다. 또 뭐가 필요하다고 이런 일을 벌이나. 2031년까지 한전공대 설립·운영에 1조6000억원이 든다. 이 돈은 전기료든 세금이든 결국 전부 국민 부담이 된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겠다면 애먼 국민에게 부담 지우지 말고 그 뜻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기부를 받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