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늘어난 나랏빚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선진국들 경험이 말해준다.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평균 부채 비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73%에서 110%로 뛰었고, 위기가 지난 후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단 시작된 복지 지출을 회수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고령화로 노인 관련 지출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빚이 빚을 불러 눈덩이처럼 부푼다는 '부채 체증의 법칙'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가 부채 비율이 40%대였지만 거품경제 붕괴에 따른 불황을 오로지 국민 세금 투입으로만 대응하는 정책 실패를 범하면서 국가 부채가 급증했다. 경제 체질을 바꾸는 구조 개혁 대신 수요도 없는 곳에 도로·철도를 짓고 토건(土建)사업을 벌였으며, 전 국민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는 일까지 벌였다. 일본의 부채 비율은 불과 5년여 만에 40%대에서 100%로 치솟았고, 다시 12년 만에 200%로 늘어났다. 경제는 살리지도 못한 채 빚만 부풀어 세계 최고의 고부채 국가로 전락했다. 이탈리아도 1980년 60%가 안 되던 부채 비율이 두 배로 불어나는 데 14년밖에 안 걸렸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82%까지 높아졌던 부채 비율을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60% 수준으로 줄였다. 불필요한 사업을 줄이고 세입 범위 내에서 지출한다는 원칙을 엄격하게 지킨 결과였다. 독일의 부채 축소가 가능했던 것은 국민이 방만한 재정 지출에 대한 거부감을 가져 포퓰리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탈리아처럼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는 나라는 국가 부채가 두 배, 세 배로 불어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각에선 우리 경우 코로나 위기가 끝나면 다시 국가 부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엔 빚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늘리겠다는 의지를 가진 정부가 있다. 고통을 감내할 국민도 없다.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문재인 케어, 일자리 안정자금,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천문학적 돈이 들어갈 제도는 한번 만들면 없애거나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꼭 필요한 복지제도는 도입하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느냐를 먼저 따져야 한다. 지금이 놓치지 말아야 할 바로 그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