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자른 머리에 파란색 후드 집업. 축구를 좋아하는 열 살짜리 소녀 '로레'는 새로 이사 간 동네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미카엘'이라 속인다. 로레는 축구시합을 하는 무리에 끼기 위해 다른 남자애처럼 침을 뱉고, 웃통을 벗고, 공을 찬다. 비밀이 드러날까 봐 조마조마한 로레의 마음과 눈부신 유년 시절의 풍경이 뒤섞이며 열 살짜리 아이의 세계로 빠져든다.

14일 개봉하는 '톰보이'는 칸 영화제·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과 경쟁을 벌였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셀린 시아마 감독의 초기작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지난 1월 개봉해 영화 팬들 사이에서 일명 '불초상' 신드롬을 일으켰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톰보이'도 개봉 요청이 쏟아진 끝에 2011년 작품이 뒤늦게 개봉하게 됐다.

영화 ‘톰보이’의 주인공 로레(오른쪽)는 짧게 자른 머리에 운동화와 축구를 좋아한다. 로레가 선택한 이름 ‘미카엘’은 중성적인 매력을 지녔던 가수 마이클 잭슨에서 따왔다.

뜨거운 햇볕과 싱그러운 여름의 초록빛이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호한 아이를 비춘다. 축구부터 수영, 물뿌리기를 하며 뛰어노는 아이들과 그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어가는 로레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 아역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시아마 감독은 주인공을 맡은 배우 조 허란의 실제 친구들을 섭외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가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다. 여자인 친구 '리사'는 축구하는 남자아이들의 무리에 낄 수 없어 벽에 기대 지켜보기만 한다. 로레는 자유롭게 놀기 위해 남자아이 흉내를 낸다. 수영장에 갈 때는 원피스 수영복을 잘라 삼각팬티를 만들고, 찰흙으로 남자 성기 모양을 만들어 집어넣는다. 영화는 아이가 느끼는 성 역할에 대한 압박과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나누는 사회의 잣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언니 뒤를 쫓아다니는 여동생 '잔'은 어떤 편견도 없이 상대를 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잔은 언니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다른 동네 친구들 앞에서도 로레를 오빠처럼 대한다. "난 오빠가 있는데 언니보다 좋은 것 같아!"

각본은 3주 만에 완성됐고, 촬영 기간 역시 20여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주로 인물 사진 촬영에 쓰이는 카메라를 사용해 캐릭터의 표정과 감정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로레 역을 맡은 조 허란은 개구쟁이처럼 뛰어놀다가도 거울 앞에 서면 자신을 들여다보는 듯한 깊은 눈빛으로 돌변했다. 시아마 감독은 "허란을 만난 순간 그녀만 있다면 무조건 이 영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로레의 비밀은 계속해서 발각될 위기를 맞지만, 그는 꿋꿋이 스스로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지킨다. 솔직하고 단단한 이 열 살짜리 아이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저 자기 본연의 모습이 되길 선택하며 우리 안의 고정관념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