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이 코로나 때문에 연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에서 2명의 확진자가 나온 지 나흘이 지났지만 이들의 감염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뒤늦게 백악관 내 마스크 착용 지침을 내리고도 정작 자신은 쓰지 않았다. 트럼프가 11일(현지 시각) 경제 재개를 위해 코로나 검사 역량을 늘리겠다고 마련한 발표 자리는 중국계 여기자에 대한 그의 인종 차별성 발언으로 끝나버렸다. 이런 혼란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백악관에서 직원들이 불안을 호소하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경제 재개를 위한 코로나 검사 능력 확대에 10억달러(약 1조2200억원)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우리는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웨이자 장 CBS 방송 기자가 "매일 미국인이 죽어가는데 왜 이걸(검사) 국제 경쟁으로 보는 것이냐"라고 묻자 "아마도 그건 중국에 물어봐야 할 질문"이라고 했다. 장 기자는 두 살 때 중국에서 미국으로 부모와 이민을 왔다.

장 기자가 "왜 나를 콕 집어 그런 말을 하느냐"고 되묻자, 트럼프는 "그런 못된 질문을 하는 누구에게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이후 트럼프는 CNN 소속 여기자가 질문을 하려 하자 갑자기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나가버렸다. CNN 등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행동을 했다"고 비판했다.

뉴욕에 등장한 ‘트럼프 죽음의 시계’ - 1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트럼프 죽음의 시계’라 적힌 광고 전광판이 등장했다. 미국 영화감독 유진 자렉키가 설치한 이 전광판 속 숫자 ‘48,121’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좀 더 빨리 대처했다면 살릴 수 있었던 사망자 숫자를 의미한다.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11일 기준 8만명이 넘었다.

백악관은 마스크 착용 문제를 놓고도 오락가락했다. 백악관은 이날 웨스트윙(집무동)에 출입하는 모든 인사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약 5100㎡(약 1540평)의 넓이에 수백 명이 빽빽이 일하고 있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온 기자들과 백악관 관리들은 전부 마스크를 썼지만, 트럼프는 쓰지 않았다. 기자들이 '왜 마스크를 안 썼냐'고 묻자 그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자신의 대변인인 케이티 밀러가 지난 8일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자가 격리는커녕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출근하는 모습이 CNN 카메라에 잡혔다. 밀러 대변인과 접촉했던 로버트 레드필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과 스티븐 한 식품의약국(FDA) 국장 등이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간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은 확진 판정을 받은 밀러 대변인과 백악관 파견 군인의 접촉자 추적을 시도했지만 감염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추가 감염자 발생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백악관 직원들은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케빈 해싯 백악관 선임경제보좌관은 전날 CBS 인터뷰에서 "일하러 가기가 무섭다"며 "백악관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출근하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도 코로나를 통제 못 하는데 일반 국민이 어떻게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백악관처럼 많은 사람이 일하고 여러 명이 오가는 곳에서 근본적으로 확진자가 한 명이란 것은 놀라운 것"이라고 했다. 확진 판정을 받은 파견 군인을 백악관 확진자 수에서 빼고 말한 것이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이날 자신이 12일 열리는 상원 청문회에서 증언할 주요 메시지를 뉴욕타임스(NYT) 기자 이메일로 보냈다. 그는 이메일에서 "너무 이른 경제 재개를 추진하는 것은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불러올 뿐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했다. 조속한 경제 재개를 원하는 트럼프에게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