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소설가

장례 행렬은 곡소리와 함께 장지로 향했다. 흰 신발을 신은 많은 일꾼이 상여를 따라갔다. 아버지와 아내 오란, 두 사람을 땅에 묻는 동안 왕룽의 가슴은 너무나 슬펐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다. 봉분 쌓은 것도 차마 보지 못하고 그는 혼자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 무덤에 내 반평생을 묻은 셈이다. 나도 절반은 그 속에 묻힌 것이다.’

―펄 벅 '대지' 중에서.

얼마 전 지인이 부친상을 당했다. 하지만 문상을 가지 못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다들 조심하는 시기이니 조문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문상객을 맞는 대신 가족이 모처럼 마주 앉아 아버지와 있었던 추억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평온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일부 국가처럼 강제적 외출 금지나 결혼식·장례식 금지령은 없다 해도 경조사를 맞이한 사람들 스스로 주변을 배려하고 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도 상실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상가의 시끌벅적함도 필요한 건데 싶어서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931년에 발표한 펄 벅의 '대지'는 척박한 삶을 땅에 의지해 살아가는 왕룽 일가 3대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자식을 낳고 쉴 새 없이 일하며 집안을 번성시켰으면서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던 오란은 아들이 결혼하는 것을 보고서야 안도하며 눈을 감는다. 이어 시아버지도 숨을 거둔다. 늙은 아버지와 고생한 아내의 장례식을 같은 날 성대하게 치렀지만 왕룽의 뒤늦은 후회와 슬픔은 잦아들지 않는다. 그들의 무덤에 자신의 반쪽을 묻고 온 것만 같아 돌아오는 길,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조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해도 떠난 이와 남은 이를 위로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찾아갈 수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면 쓸쓸해진다. 코로나가 사라지고 사회 활동이 정상화될 때까지 장례식 치를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달려오는 죽음을 막아설 수 있는 이 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