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결과는 몹시 이례적이지만, 조작 가능성은 0%라고 단언한다. 실시간 개표 상황표를 벽에 붙여놓는데 어떻게 조작이 가능하겠나. 그러려면 선관위 직원, 개표 사무원, 정당추천위원, 참관인들이 모두 한통속이 돼야 한다.”

이렇게 입을 연 김대년(61)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친(親)정부 성향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두겠다.

2018년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국회의원 재직 시절 정치 후원금을 자신의 소속 기관에 셀프 기부한 게 논란이 됐을 때다. 청와대가 위법 여부를 중앙선관위에 물어왔다. 최고의 권부가 원하는 답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는 위법 결정을 내렸고 김기식은 금융감독원장에서 물러났다.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이 그였다. 이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의 눈 밖에 났을 것이다. 총선 전에 그는 국회 몫 중앙선관위원으로 추천됐으나 여당의 비토를 받았다.

의혹 제기할 만한 사안

―사전투표 조작설을 놓고 보수 인사들끼리 갈라져 감정적 언어로 서로 비방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상식선에서 의혹을 제기할 만한 사안이다. 선거 불복으로 폄하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관계를 따져보고 허위 주장을 걷어내는 게 올바른 접근이 아닐까?

"동의한다. 나도 선거 다음 날 아침 최종 결과를 보고 많이 놀랐다. 젊은 층이 사전투표에 쏟아져 나온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50·60대 이상 사전투표율이 높았다는 걸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 보수 유권자들의 허탈감이 얼마나 심했겠나.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다."

김대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은 “투표지 분류기에는 현실적으로 다른 칩을 심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에서 패한 진보 진영은 '전자개표기 조작설'을 제기했다. 개표장마다 투표지 분류기가 인식하지 못한 미분류표 중 박근혜 후보 표가 문재인 후보 표의 1.5배였다고 주장했는데?

"그때는 사전투표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투표지 분류기는 정확하게 기표(記票)된 것만 인식한다. 경계선에 찍혀 있으면 못 읽어 미분류표가 된다. 당시에도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이 가세했다. 박근혜 득표율이 51.6%가 나오자 '선관위가 5·16을 정당화해주려고 조작했다'고도 했다."

―당시 선거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내가 의혹 해소를 위해 투표지 분류기를 공개 시연하자고 했다. 내부 반대가 심했지만, '곰팡이는 햇볕을 쬐면 사라진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생중계했다. 난장판이 됐지만 그렇게 해서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좌파 진영에서는 2017년 음모론에 근거해 '더 플랜'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확신하면 언제든지 소송을 제기하라고 했다. 그쪽에서 하지 않았다. 국민적 동조도 못 받았고."

―이번에는 확산 규모나 전개 상황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데?

"유튜브가 그때보다 훨씬 활성화됐다. 더 자극적인 음모론을 펴야 조회 수가 올라가고 영향력과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 소위 음모론의 경제학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정의감에 근거하고 있다. 한 원로 통계학자는 선거 데이터를 보고는 "신(神)이 그렇게 미리 만들어놓지 않으면 나오기 어렵다"라는 말까지 했다. 제기된 의혹에 관해 하나씩 따져보자. 사전투표용지의 'QR 코드'에는 유권자 개인 정보가 들어 있고,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데?

"사전투표는 투표소에 선거인명부를 비치할 수 없다. 투표용지 발급기로 현장에서 프린트해준다. 투표용지를 발급해주기 위해 QR 코드가 쓰인다. 법 조문에는 '바코드'로 돼 있지만, QR 코드를 '2차원 바코드'로 전문업계에서는 부르기도 한다."

―법 위반이 된다는 걸 인식했기에 올 초 'QR 코드'를 사용할 수 있게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려고 하지 않았나?

"법 위반이 아니라 논란이 있어 국회에 개정 의견을 낸 것이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사태로 개정을 못 했다."

―바코드를 쓰면 될 일이지, 왜 QR 코드를 사용했나?

"2014년 도입 당시부터 바코드로는 선거명, 선거구명, 관할선관위명, 일련번호 등 많은 정보를 담는 게 불안정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 당시 진보 진영에서 'llllll' 바코드는 보수 여당의 1번을 떠올리게 한다고 반발했다. 지금까지 다섯 차례 전국 단위 사전투표에서 모두 'QR 코드'를 사용해왔다."

―투표지 분류기에 칩을 심어 조작할 수 없나?

"중앙선관위는 각 지역선관위에 투표지 분류기 운영 프로그램을 담은 보안카드를 인편으로 배분한다. 개표 전날 참관인이 지켜보는 데서 보안카드를 탑재해 작동을 확인하고 봉인한다. 개표 날 참관인이 이상(異常) 유무를 재확인하고는 운영한다. 현실적으로 다른 칩을 심을 수가 없다. 또 전산망이 연결 안 돼 있어 외부 해킹이 불가능하다. 단순한 전자계수기에 불과하다.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하지만 이중 삼중 수작업 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다."

―상급 선관위에 집계 상황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해킹이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개표장에 있는 참관인과 선관위원들이 모두 숫자를 확인하고 개표 상황표를 벽에 붙여놓는다. 집계 결과를 전송 보고만 하는 게 아니라 대조를 하도록 개표 상황표도 팩스로 보낸다. 이런 과정이 방송과 주요 포털 사이트,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다. 조작이 이뤄지려면 이 모든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공모해야 한다." 사람에 의한 바이러스 ―사이버 첨단 범죄 기술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지 않을까? "공상소설이나 영화처럼 스파이가 서버에 칩을 심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그게 절대 불가능하다고 보나? "서버 프로그램을 납품한 외부 전문 기술자가 선관위에 가끔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사람에 의한 바이러스를 걱정했다. 나는 사무총장 재직 시절 '그 사람들을 못 믿는다. 작업할 때 반드시 입회하고 나중에 점검하라'고 했다. 요즘도 이렇게 하는지 궁금하다. 설령 서버를 해킹한다고 해도 투표지를 어떻게 바꿔치기하겠나. 투표지에 모든 진실이 있다." ―관내 사전투표의 선거인 수보다 투표수가 +1 더 많이 나온 투표소가 10군데나 조사됐다고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투표 종사자들의 실수로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일이다. 전국에서 투표용지 수천만 장을 다루면서 발생하는 극히 일부 지역의 사례다." ―서울 광진을은 사전투표함을 개봉하니 표가 고봉처럼 솟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예 접지 않은 빳빳한 투표지도 대거 나왔는데? "나도 그 동영상을 보았다. 투표함에 넣은 투표지가 시간이 지나 종이의 탄성에 의해 스스로 펴지면서 부피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투표지를 돌돌 말아 투표함에 넣으면 접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개표할 사전투표함의 봉인지가 훼손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선관위는 봉인지 훼손 사례는 없다고 했다."

투표지가 담겨 있는 삼립빵 상자.

―삼립빵 상자 등에 사전투표지가 들어 있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선관위에서 제작한 '투표지 보관 상자'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전체 투표수의 10%에 해당하는 관외(管外) 사전투표함은 각 지역 선관위가 우체국 직원에게 전달하는 순간부터 어떠한 참관이나 경찰 동행, CCTV 기록이 없다는데?

"관외 사전투표지는 수시로 우체국 인계·접수가 이뤄져 참관이나 경찰 입회가 이뤄지지 않지만 자체 매뉴얼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이런 조작 의심을 받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인데?

"선관위가 총선 관리 과정에서 일부 불신을 자초한 면이 있다. 가령 자유한국당이 위성비례정당의 명칭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하겠다고 했을 때다. 선관위 사무처에서는 이를 검토하고 허용해준 걸로 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가 '이런 유사 명칭 사용을 중앙선관위가 막아야 한다'고 하자, 이틀 뒤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이 한 인터뷰에서 '기존 정당 명칭과 뚜렷하게 구별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 선관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불가 입장을 확정했다."

―조해주 위원은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경력으로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그렇다 해도 '유사 명칭'으로 판단할 소지는 있지 않나?

"자유한국당은 지역구이고,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라 투표용지가 다르다. 유권자가 혼란을 겪을 이유가 없다. 신생 당명을 못 쓰게 하는 것은 기존 정당에 피해를 줄 때인데 당사자인 한국당에 무슨 피해가 있나. 2015년 현 집권당이 야당 시절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꿀 때 민주당이 엄연히 존재해 반발이 심했지만, 헌법상 '정당 설립의 자유' 정신에 근거해 허용한 전례가 있다."

―선거 과정에서 '투표로 100년 친일 청산' '투표로 70년 적폐청산' 같은 민주당 쪽 현수막은 허용해주고, '민생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 '거짓말 OUT 투표가 답이다'라는 야당 쪽 현수막은 불허했는데?

"이게 논란이 되자, 선거 이틀 전 중앙선관위 긴급위원회의가 열려 모두 불허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민주당 쪽 현수막은 이미 상당 기간 걸려 있었다. 박빙 승부가 난 지역구라면 잘못된 현수막으로 영향이 있었다고 선거무효소송도 할 수 있었다. 선관위의 자세가 지금 같은 음모론이 파고들 여지를 준 셈이다." 투표지 실물과 영상 보관

―국민적 의혹이 이렇게 확산되고 있는데도, 선관위는 원론적인 반박 보도자료만 내는 식인데?

"일각에서 제기되는 서버 검증 조사에도 적극 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투표지 실물과 함께 투표지 분류기가 투표지를 읽어낸 영상이 보관돼 있다. 하지만 선거 소송 등 법적 절차 없이는 공개가 어렵다. 선거 뒤 한 달 안에 소송이 제기돼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가능하다. 그 기간이 지나면 현행법으로는 투표용지를 확인할 수 없다."

―향후 어떤 선거구의 재검표에서 현저하게 개표 당일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그런 확률은 전혀 없다고 보지만, 만약 그렇게 나오면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다른 지역구들도 재검표를 하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