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죄는 아닐 수도 있는데, 욕은 먹는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유부남 이태오가 아내 지선우에게 불륜을 들키고서 이렇게 소리치자, TV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욕을 내뱉었다. 그렇게 욕을 많이 먹은 드라마이지만, 시청률은 꾸준히 20%를 넘겼다. 지난해 흥행에 성공한 SBS 드라마 'VIP'나 지금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화양연화'도 모두 불륜이 소재다. 현실에서도 불륜은 인기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불륜을 한 이들이 모인 카페 '금지된 사랑'도 개설이 됐다. 회원 수는 2만6000명이 넘고, 6일 현재 하루 방문자 수 3만명이 넘었다.
부부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어서 금기시되지만, 흔하기도 하다. 이런 불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무튼, 주말'이 불륜을 물었다.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성인 남녀 702명이 응답했다.
기혼자 셋 중 한 명은 "불륜 해봤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 기혼자의 30.4%가 불륜을 해봤다고 응답했다. 기혼 남성 중 41.3%, 기혼 여성 중 24.4%인 것으로 드러났다(남녀 불륜의 최저 기준은 아래 확인). 가사 소송을 주로 하는 변호사와 부부 상담을 하는 정신과 전문의들은 기혼 여성의 불륜 비율이 설문조사보다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사 소송을 주로 다루는 최한겨레 변호사는 "예전에는 기혼 남성과 미혼 여성의 불륜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기혼 여성과 기혼 남성, 기혼 여성과 미혼 남성의 불륜이 많이 늘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성별 간 차이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
온라인 카페 '금지된 사랑'에선 기혼끼리 만나는 것을 '기기' 혹은 'ㄱㄱ'으로, 기혼 남성과 미혼 여성이 만나는 것을 '기남미여', 그 반대를 '기여미남'으로 표현한다. 게시판에서 세 가지 경우를 모두 찾아볼 수 있다. 기혼 남녀가 만나는 경우, 지속 기간이 더 길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6월 '만난 지 12년이 넘어가는 기기'라는 글이 올라오자 '우린 10년이 넘어가는 기기' '우린 16년 차 기기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기혼 남녀가 12년간 사귀다가 각자 자녀를 다 대학에 보내고 이혼을 한다'는 글에는 축하와 함께 '부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기혼을 선호하는 이유는 더 안전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모(40대·자영업)씨는 "지금까지 세 번 외도했는데,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기혼 여성을 만났다. 미혼 여성인 경우,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야 하고 이혼을 바라기도 하기 때문에 기혼 여성을 선호한다"고 했다.
가사 소송을 주로 다루는 이명숙 변호사는 "바람이 난 기혼 남녀의 배우자끼리 만나서 하소연과 위로를 하다가 사귀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만난 기혼 남녀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이 둘은 재혼했다. 요즘 불륜에는 나이나 성별, 결혼 여부에 따른 차이점이 별로 없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태오가 과거 내연녀이자 현재 아내 여다경에게 말한다. "너랑 나 바람 아니었잖아." 여다경이 그의 품에 안긴 채 대답한다. "맞아. 절대로 단 한 번도 떳떳하지 않은 적 없었어."
불륜한 이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의 이름이 '금지된 사랑'이란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여긴다. 카페 내에서도 '불륜'이나 '외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금사'('금지된 사랑'의 줄임말) 혹은 'ㄱㅅ'(금사의 초성)을 쓴다. 대부분의 기혼자가 "우리 불륜은 바람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이태오의 대사에 분노했다면 이 카페에선 아내 지선우가 남편의 불륜 상대 여다경에게 "유부남의 바람은 배설"이라고 말한 대사에서 들고일어났다. 'ㅇㅇ(와이프를 지칭하는 말)와 기계적으로 해야 하는 성관계야말로 배설' '나는 기혼남이지만 배설이란 말에 분노가 앞섰다. 나는 (불륜) 상대의 사랑을 느끼고 싶어한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설문조사에서 불륜을 한 남성과 여성 모두 불륜의 이유로 제일 많이 꼽은 게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사랑해서'(54.4%)였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성욕이나 배우자와의 성관계 불만'(21.3%)으로 1위에 비해 응답자 수가 절반도 못 미친다. '배우자에게 화가 나서'(7.3%)가 3위를 차지했다. 이모(40·전문직)씨는 "결혼 초반, 남편이 나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을 때 홧김에 옛날 애인과 잠깐 만난 적이 있다"며 "이혼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외도를 멈췄다"고 했다. 최명기 정신과 전문의는 "불륜을 한 사람들은 사랑이나 권태, 복수 등 다양한 이유를 대지만, 결국은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고 싶다는 게 이유다. 성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불륜은 없다"고 했다.
불륜을 해봤거나 하는 사람들은 배우자의 불륜에 관대할까?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한 적이 있다'는 항목에서 '네'라고 응답한 기혼자 비율은 34.4%였지만, 응답자를 불륜 경험자로 국한하면 '네'의 비율은 73%로 늘어난다. '배우자의 불륜을 알았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당장 이혼을 하겠다'거나 '별거나 각방을 쓰겠다'고 응답한 불륜 경험자도 67.4%다. 자신이 불륜을 한다고 해서 배우자의 불륜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륜의 대가는 얼마?
연애를 하는 미혼남녀 사이에서 데이트 비용이 문제가 되듯이 불륜 관계에서도 돈이 문제가 된다. 기혼자의 경우, 경제권이 배우자에게 있거나 가계에 소득을 다 써야 하는 상황이 가장 문제다. '금지된 사랑'에서 'ㄱㄴ(기혼남)이 경제권을 ㅇㅇ(와이프)에게 다 넘겨서 만날 때마다 내가 돈을 다 낸다' '금사(금지된 사랑)를 하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기기로 만나는데 봉투에 각자 현금을 넣어서 데이트 통장처럼 쓴다'는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기혼 남성과 만나던 한 미혼 여성은 '나한테는 돈 한 푼도 안 쓰면서 아내와 아이에겐 돈을 잘 쓰는 걸 보고 열이 받아서 데이트 비용을 받아내는 청구서를 아내에게 보낼 계획이다'라고 했다.
돈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은 불륜을 들킨 다음이다. 간통죄는 2015년 2월, 62년 만에 폐지됐다. 형법상 간통죄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했고, 이혼을 전제로 했다. 설문조사에서 간통죄 폐지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48.9%, '반대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51.1%로 팽팽하게 맞섰다. 간통죄 폐지에 반대하는 기혼 남성 김영하(41·가명)씨는 "바람난 아내와 상간남에게 민사소송으로 돈을 받아내긴 했지만, 그 금액이 두 사람에게 타격을 입히지 않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던 나에게별 도움도 안 됐다. 그들이 형사 처벌을 받아서 불륜을 했다는 것을 합법적으로 알리고 싶다"고 했다.
간통죄가 없어진 이후에는 상간자에게 민법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거나 배우자와 상간자 모두에게 위자료 청구소송을 한다. 불륜으로 정신적인 피해와 가정이 파탄 난 데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불륜 상대가 1000만원에서 3000만원 정도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불륜의 지속 기간, 재산 규모, 방식에 따라서 금액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 1억원이나 3억원을 받은 의뢰인도 있었다"고 했다.
"돈을 낸다고 해서 불륜을 그만두는 것도 아니에요. 한 의뢰인은 같은 불륜 상대를 상대로 세 번째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첫 번째 소송에선 3000만원, 두 번째 소송에선 5000만원을 내고도 남편과 피고인이 다시 만난 거죠."
드물긴 하지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간자를 대신해 불륜 배우자가 돈을 내기도 한다. '금지된 사랑'에서는 '나중에 ㅇㅇ(와이프)에게 걸리면 ㄱㅁ(기혼남)이 대신 돈을 내주기로 약속했다'는 내용의 글도 볼 수 있다. 최한겨레 변호사는 "불륜 상대를 대신해 돈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1500만원의 위자료를 한 번에 내지 못해서 10개월간 나눠서 내는 피고인도 있었다. 연이율 12%의 이자까지 붙어서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을 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요새는 불륜 상대가 자신을 고소한 상대 배우자에 대해 맞고소하기도 한다. 대여섯 가지 항목을 한 번에 걸어 고소하는 경우도 봤는데,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다"고 했다. 상대 배우자가 복수하기 위해 상간자의 회사에 불륜 사실을 알리는 경우엔 명예훼손으로, 상간자의 부모·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하는 경우엔 협박으로 맞고소한다. 불륜에 대한 법원의 정서는 부정적이기 때문에 상대 배우자의 벌금은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 화를 참지 못한 상대 배우자의 경우, 폭행으로 고소당하기도 한다.
"데이트만 해도 불륜(女 58%)" 對 "지속적인 성관계가 필수(男 40%)" 2020 불륜의 최저 기준
"그 여자와 성적인 관계는 맺지 않았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 맺은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을 때, 그는 아마 "섹스를 하지 않았으니 불륜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우자가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을 불륜이라고 보는 사람부터,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정서적 교감 없이 성관계만 가진 건 불륜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까지, 불륜의 기준은 다양하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금, 법에서는 불륜을 '부정한 행위'라고 이르고 있다. 이 역시 범위가 넓고 애매모호하다. 불륜이란 무엇인가.
설문 조사에서 불륜의 최저 기준에 대해 물었을 때 남녀의 응답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 응답자가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지속적 성관계'(40.1%)였지만, 절반이 넘는 여성 응답자는 '성관계가 없는 애정 관계 혹은 데이트'(58%)라고 했다. 2위로는 남성 응답자가 '성관계가 없는 애정 관계 혹은 데이트'(35.5%), 여성 응답자가 '지속적 성관계'(17.1%)를 꼽았다. 남성 응답자가 3위와 4위에 각각 올린 것은 '일회성 성관계 혹은 성매매'(15.3%) '짝사랑'(7.7%), 여성 응답자는 이 두 항목 순위가 바뀌었다. '짝사랑'이 11.1%, '일회성 성관계 혹은 성매매'가 9.4%로 나왔다.응답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의 불륜에서 남자는 육체적 관계를, 여자는 정신적 관계를 더 결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기타 의견도 다양하게 나왔다. 기혼자 강정화(31·가명)씨는 "산악회 가입부터 불륜으로 볼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하면 혼자 산에 가면 되는데 굳이 남녀가 함께 모이는 산악회에 가는 건 이성을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기혼자 남명수(38·가명)씨는 "아내가 직장 남성 동료의 차를 타고 시내로 출근하는 카풀을 했다. 일주일 중 5일간 자동차와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것도 불륜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상담심리학자 에스터 페렐의 저서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은 현대사회에서 불륜은 “두 개인 간의 계약 위반이란 개념과 관련이 있다”며 “둘 사이의 합의를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배신을 만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연애 시절, 이성 친구와 따로 만나는 것이 싫다고 두 사람이 암묵적 합의를 했다면, 결혼해서도 이 행위를 불륜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합의를 하지 않은 다른 부부 사이에서는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게 불륜이 아닐 수 있다. 불륜의 정의는 사회나 사법 체계가 해주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이뤄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