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는 장로교 정신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의 원칙뿐 아니라 대의(代議)제도, 보통교육·무상교육과 사회복지까지 당시로써는 획기적 기준을 제시했지요. 이 책이 아직 국내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놀랍지요."
대부분의 개혁은 과거와 다른 미래, 그리고 새로움을 지향한다. 그러나 종교 분야의 개혁은 과거, 그것도 원점(原點)을 지향한다. '초심 회복'이다. 최근 종교개혁사 전문 연구자 박경수(56) 장로회신학대 교수가 번역·해설한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장신대출판부)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내 개신교의 70%를 차지하는 장로교의 초심이 담긴 문서이기 때문이다.
'치리서(治理書·The Book of Discipline)'는 신앙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율을 담은 일종의 헌법이다. 루터가 쏘아 올린 종교개혁 신호탄이 제네바의 칼뱅을 거쳐 스코틀랜드로 확산해 '장로교'로 정착한 결과물이 '치리서'다. 1560년엔 존 녹스를 중심으로 '제1치리서', 1578년엔 앤드루 멜빌 등이 작성한 '제2치리서'가 발간됐다. 각 치리서는 교리, 성례(聖禮), 목회자·장로·집사의 선출 등에 관해 디테일까지 치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박 교수는 "당시 종교개혁가들이 품격과 질서 있는 신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는 증거가 치리서"라고 했다.
목사, 장로, 집사, 교사 등의 직분은 권력 분산과 견제를 위해 정교하게 설계됐다.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를 통한 대의제는 목사 1인의 독단과 군중심리로 움직이는 폐해를 피하기 위해 채택된 제도. 목회자는 선출 이후 검증과 승인 절차를 거쳐야 취임할 수 있었다. 장로와 집사는 원칙적으로 매년 선출하도록 했다. 특히 교회 재산을 다루는 집사의 임기는 1년. 3년의 공백기가 지나야 재선임될 수 있었다. 당회(堂會)→노회(老會)→총회로 구성되는 동심원적 의사 결정 구조도 이때 확립됐다.
교회 재산의 지출 항목은 딱 네 가지. 목회자 봉급, 학교 교사 및 교회 직원, 가난한 사람 그리고 교회 유지비·예비비였다. 교회 지출의 절반 정도는 어려운 이를 위한 구제에 사용했다.
원리주의적인 면도 발견된다. 장례식은 일체의 의식 없이 망자를 매장하는 것으로 정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불필요하며 노래나 낭독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못 박았다. 자칫 망자에 대한 추모가 우상숭배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묘지도 교회 주변이 아니라 한적하고 외진 곳에 마련할 것을 권했다. 성만찬의 경우도 예수의 최후의 만찬처럼 테이블에 둘러앉아 거행하는 것을 권장했다.
성경 연구의 일상화는 기본이었다. 목사뿐 아니라 일반 가장도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도록 했다. 대학 설립 등 교육을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세인트앤드루스, 글래스고, 애버딘 대학의 교육과정을 개혁하고 에든버러 대학을 설립한 장로교는 신학·히브리어·그리스어 등 신학 전공 강사들의 급료를 논리학·수학 강사의 두 배로 지급했다.
올해는 스코틀랜드 교회 제1치리서가 발표된 지 460주년 되는 해. 개신교계에선 '총회나 교단 헌법보다 대형 교회의 힘이 더 세다'는 말도 나온다. 교단 헌법이 왜곡·무시되고 아전인수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박 교수는 "스코틀랜드 교회치리서의 핵심은 '삶과 가르침의 일치'"라며 "최근 한국 장로교회가 질서와 품격을 중시한 장로교회 정치의 정신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뿌리인 치리서를 번역·해설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