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업체에 다니는 홍기민(43)씨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2차 세계대전 관련 다큐멘터리를 '몰아보기' 했다. 그는 "주말마다 '집콕' 하며 영화·드라마를 주로 봤는데, 어느 순간 다큐가 눈에 들어오더라"면서 "새로이 알게 된 것도 많아 시간을 알차게 보낸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넷플릭스, 왓챠 등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예능, 드라마 위주인 TV에서 소외감을 느끼던 중년 남성들이 특히 열광한다. 인터넷 카페·블로그에서는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100인, 인간을 말하다'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이상 넷플릭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왓챠) 등 볼만한 다큐 목록을 돌려보며 공유한다.

미드처럼 다큐도 몰아본다

지난해 한국 시청자들이 가장 사랑한 넷플릭스 다큐 1위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은 해를 넘겨서도 인기다. '진주만' '드레스덴 폭격' 등 흑백으로 남아 있는 기록 필름에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일일이 색(色)을 입혀 10개 에피소드로 만들었다. 오리지널 콘텐츠에 연간 90억달러(약 11조원)를 쏟아붓는 넷플릭스 파워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문가들의 해설과 퇴역 장병 증언 등을 기록 영상과 엮어 2차 대전의 전개 양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이참에 공부 좀 하자"며 영어 대본을 구해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최근 공개된 '타이거킹: 무법지대'도 화제다. 사유지에서 호랑이와 사자 등 고양잇과 짐승(Big Cat) 수백 마리를 키우는 실재 인물이 등장한다. 동물 학대, 폭력, 방화, 동성애, 살인 청부 등 적나라한 세계를 보여줘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탐사 보도의 대상을 다큐로 만들면서 '스토리'가 형성되고, 시청자들이 문제적 인물의 세계관에 빠져드는 독특한 경험을 준다"고 말했다. 너무 '미국적'이라 한국에서 인기는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미국과 일본에서 먼저 공개하면서 한국 시청자들의 원성을 산 마이클 조던의 전기 다큐 '더 라스트 댄스'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우리나라에선 오는 11일 공개된다.

왓챠에선 1963~1966년 비틀스가 투어 공연을 다닌 4년간의 기록을 담은 '더 비틀스:에잇 데이즈 어 위크', 정규 앨범 단 두 장으로 1500만장 판매 기록을 세운 요절 가수의 일대기를 다룬 '에이미' 등 음악 다큐가 강세다.

나라마다 다른 다큐 취향

국가별로 선호하는 콘텐츠는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은 '길 위의 셰프들' '더 셰프 쇼' 등 생활 콘텐츠가 많은 반면, 영미권에선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 '매들린 매캔 실종 사건' 등 하드보일드한 작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다큐 제작의 큰손이다. 2017년 시리아 반군 구호 조직을 다룬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단편) 이래, 국가 주도 차원의 도핑을 폭로한 '이카로스'(2018), 인도의 가난한 마을 여성들이 저렴한 생리대를 만들면서 일으키는 변화를 담은 '피리어드: 더 패드 프로젝트'(2019), 올해 '아메리칸 팩토리'까지 4년 연속 다큐 분야에서 아카데미상을 탔다.

코로나 사태로 급증한 넷플릭스 가입자 증가세에는 영화, 드라마, 코미디에 이어 다큐까지 포트폴리오가 갖춰진 콘텐츠 파워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넷플릭스 1분기 글로벌 신규 가입자 수는 당초 예상했던 700만명의 두 배가 넘는 1577만명이었다.

이문원 평론가는 "'타이거 킹'만 해도 5년을 촬영해 편집했기 때문에 스토리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영상산업 전 분야에서 글로벌 OTT의 영향력이 극대화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