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기 맥심배 우승자 이지현(28)은 '저격수' 체질이다. 랭킹 9위였던 그가 3위 신민준(21)을 완봉하고 맥심배를 차지할 것으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2년 전 제5회 국수산맥배서 첫 우승 할 때도 그랬다. 21위 신분으로 3위(당시) 변상일을 결승서 꺾었다. 지난달 20일 두 번째 '거사(擧事)'에 성공한 이지현 9단을 만났다.

맥심배에서 우승하고 내달 입대하는 이지현 9단. 2년 전 국수산맥배에 이어 이번에도 자신보다 랭킹이 월등히 높은 신민준을 결승서 완파했다.

"저도 신기해요. 준결승서 탈락한 대회가 꽤 많았는데, 준결을 넘어 결승만 가면 마음이 편해져요." 입신(入神·9단의 별칭)들만 출전하는 이번 대회서도 박영훈 홍민표 최정을 제친 뒤 맞은 나현과의 4강전이 최대 고비였다. 그는 "거의 졌던 바둑을 역전승하고 우승을 예감했다"고 했다.

결승에 앞서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다. "(신)민준이 기보를 분석해보니 굉장히 두텁고 침착하더군요. 평범히 두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전투 전략을 세운 게 적중했습니다." 그는 친구 사이인 박정환(27) 9단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결승 직전 인터넷에서 그가 연습 대국을 신청해 줘 두 판을 둔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것.

초등 4학년 때 고향 대구를 떠나 상경, 장수영 도장에서 성장했다. 평생 절친이자 라이벌인 안국현도 이 무렵 만났다. 둘은 동갑에 같은 도장, 같은 고교를 나온 각별한 인연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훨씬 세요. 입단만 국현이가 4개월 빨랐죠." 이지현의 농담이다.

초등 5학년 때 대한생명배 우승으로 어린이 바둑계를 평정하고, 이듬해엔 전국 4관왕이 됐지만 프로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입단대회 낙방 횟수가 열 번이 넘었을 정도. 2009년 제1회 비씨카드배서 프로들을 연파, 본선서 강호 스웨마저 꺾은 이듬해 18세의 나이로 늦깎이 입단했다. 경성고 졸업반 시절이었다.

실력에 비해 국제 무대서 빛을 못 본 기사로 꼽힌다. 메이저 세계대회 최고 성적이 16강 1회에 그치고 있다. 예의 '울렁증' 때문이다. 하지만 이지현의 매운 펀치는 외국에서 더 알아준다. 국가 대항 단체전으로 한국이 6년간 4번 우승한 오카게배에서 이지현은 총 4번 출전에 12승 4패를 기록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성적 내는 기사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지현도 AI(인공지능)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한큐바둑·릴라제로·카타고 등 여러 AI를 놓고 공부한다. 집 바둑보다는 싸움 바둑을 즐기고, 초·중·종반 중에선 중반전이 가장 자신 있다. "인공지능 발달로 초반 포석은 공부 많이 하는 기사의 몫이 됐어요."

6월 8일 입대한다. 지난달 정든 국가대표팀서도 자퇴했다. 그는 만 4년 넘게 국대리그서 활약해온 대표팀 '터줏대감'이었다. 작년엔 신진서와 공동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을 쌓고 더 강해져 돌아와 세계무대서 성적 낼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