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일일 코로나바이러스 브리핑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인물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26일 백악관의 코로나 태스크포스(TF)를 총괄 지휘하는 ‘코로나 짜르(Czar)’로 임명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다. 트럼프가 코로나 치료법으로 황당하게 살균제를 먹는 방안을 제시하거나, 연방정부의 대응 부족을 불평하는 주지사들을 거칠게 비난할 때에도 펜스는 도무지 읽히지 않는 표정으로 곁을 지킨다.
뉴욕타임스는 3일 “덕분에 펜스는 “세계 수준의 포커 페이스(poker face)”라는 평도 듣지만, 그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펜스가 ‘코로나 짜르’가 되고 초기 백악관 브리핑을 주도할 때에는 희생자를 애도하고 코로나에 대한 단호한 대응 태도를 보여줄 때 성숙하고 정중한 모습을 보여 신뢰를 얻었다. 워싱턴포스트는 3월17일 한 칼럼에서 “펜스 대통령이란 표현이 이토록 잘 어울린 적이 없었다”며 “공화당이 트럼프 탄핵에 반대한 것이 얼마나 단견(短見)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고 할 정도로 그를 칭송했다. 그러나 주목(注目)의 중심에 있길 원하는 트럼프가 그 자리를 독차지했다.
펜스는 자기 절제가 강하고, 대본에 충실하게 행동한다는 평을 듣는다. 또 언제 트럼프 말을 따라야 하는지 언제 무시해도 되는지를 아는 듯하다고, NYT는 보도했다. 트럼프가 백악관 브리핑에서 공개적으로 “내가 마이크(펜스)에게 (불만이 많은) 워싱턴 주지사에겐 전화도 하지 마시오. 시간 낭비요. 미시간의 그 여자(주지사)에게도 마찬가지”라고 지시했다고 했지만, 펜스 부통령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양 이들 주지사와 수시로 연락한다. 트럼프가 ‘뱀’이라고 비판했던 제이 인슬리 워싱턴 주지사는 “펜스는 포커페이스가 대단하고, 내 의견에 동의하고 주 정부 입장을 이해하지만 속마음은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고 NYT에 말했다. 또 다른 주지사는 “트럼프 정책을 ‘미친 짓’이라고 말하면서 펜스가 ‘맞아요, 나도 알아요’라고 맞장구 쳐 주기를 기다려도, 펜스는 ‘이해한다. 의견 고맙소’라고 만 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취임 초기에 워싱턴 정가에선 펜스 부통령이 ‘예측 불허의’ 트럼프 행정부에서 방향을 잘 잡아주리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그런 기대를 완전히 허물었다. 펜스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대중에 더욱 노출돼 위상은 높아졌지만,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의 영향력은 한계를 드러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보건·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낸 캐슬린 시빌리어스는 “트럼프가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안, 펜스는 조수처럼 서 있는다”고 비판했다.
아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코로나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지도력” “그의 결정적인 행동” 등등의 표현으로 추겨 세우기 바쁘다. 그는 2017년 6월 트럼프가 참석한 한 각료 회의에선 3분간 발언을 하면서, 12초마다 트럼프 찬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나라를 회복하기 위한 의제를 미리 보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대통령이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신뢰성을 회복시켰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관료주의를 깨는 법안에 가장 많이 서명했다” “대통령께서 매였던 미국의 에너지를 풀어놓았다”….
독실한 개신교도인 펜스는 자신을 “크리스천, 보수주의자, 공화당원의 순서”로 소개한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는 “펜스는 신(神)이 자신에 대해 계획을 갖고 있으며, 그 계획이 요구한다면 잠정적으로 존엄성이나 원칙도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보수 칼럼니스트인 조지 윌은 펜스를 “미국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