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 무역수지(상품의 수출입 차이)가 99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지난달 수출(369억2300만달러)은 전년 동월 대비 24.3% 줄었다. 국내 소비·생산 역시 부진해 수입(378억6900만달러)도 전년 동기 대비 15.9% 감소했다. 그러나 수출 감소 폭이 워낙 커 9억4600만달러(약 1조1530억원)의 무역 적자가 났다. 수출의 버팀목이던 반도체(72억달러)가 14.9%, 자동차(부품 포함 34억달러)가 40.9% 줄었다. 한국의 20대 수출 품목 중 17개가 감소했다.

내달 발표되는 4월 경상수지(무역수지에 서비스·소득 수지를 더한 것)도 대규모 적자가 났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외국인 배당금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수출이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은 작다. 중국·미국·유럽 등 주요 수출시장의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 30일(현지 시각)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국) 경제가 최대 12%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

◇석유 제품 등 20대 품목 중 17개 감소

지난 1년여간 감소세였던 수출에서 그나마 버팀목은 반도체였다. 그러나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15%(12억달러) 감소한 72억달러에 그쳤다. 스마트폰·가전 등 수요 감소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IT 업체들도 경기 침체를 예상하고 선(先)구매를 크게 줄이고 있다.

자동차 수출은 거의 반 토막 났다. 완성차(24억달러)는 36%, 부품(10억달러)은 50% 감소했다. 일반기계(-20%), 석유화학(-34%), 철강(-24%), 석유 제품(-57%)의 수출도 크게 줄었다. 20대 수출 품목 중 지난달 성장세를 기록한 것은 바이오헬스(29%), 컴퓨터(29%), 플라스틱 제품(29%) 등 3개에 불과하다.

◇22년간 이어온 무역 흑자 기조 바뀌나

한국은 외환 위기를 지나던 1998년부터 무역 흑자 기조를 유지해왔다. 지난 20여년간 무역 적자를 기록한 해는 글로벌 금융 위기였던 2008년뿐이었다. 월별로 따져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엔 2010년 1월과 2012년 1월을 제외하고 줄곧 흑자였다.

이처럼 당연시되던 무역 흑자가 이제는 '옛일'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유럽 등에서의 대량 실업, 중국의 마이너스 성장(1분기) 등이 지속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율이 44%(2018년 기준)인 한국 경제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핵심 경제지표인 '경상수지'도 크게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4월은 기업 배당이 집중되는 시기로, 배당받은 외국인이 돈을 달러로 바꿔 해외로 대거 가져간다. 이 때문에 본원소득수지가 주로 적자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올 4월에도 전년 동월(-41억8000만달러)과 비슷한 규모의 적자가 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경상수지 적자 폭이 더 커지면, 환율 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산업부는 이날 "이번 위기는 금융 위기(2008~2009년), 바이러스 위기(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저유가 위기(2015~2016년)를 아우르는 복합 위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민간 소비로 인한 소비재 수입, 국내 생산에 기여하는 자본재·중간재 수입이 지속 유지되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인정받는 가운데 국내 제조업이 정상 가동하면서 주요국 대비 내수 여건도 상대적으로 양호함을 방증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안일하다"고 지적한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전 세계 각국이 '리쇼어링'(reshoring·해외 나간 자국 기업 유인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도 파격적인 지원뿐 아니라, 노동 규제 개혁 등 근본적인 투자 환경 개선을 하지 않으면 위기가 더 빠르게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