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유산|존 르카레 지음|김승욱 옮김|열린책들|456쪽|1만5800원

영국 비밀 첩보원 출신의 소설가 존 르카레(89)가 3년 전에 발표한 장편 '스파이의 유산'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출세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1963년) 후속작이다.

영국 정보부에서 은퇴해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는 주인공 '나'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에 동독 정보부(슈타지)를 상대로 영국이 실시했던 기만 작전, 암호명 '윈드폴'에서 내가 수행했던 역할을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묘사한 것이다. 이 작전은 내가 함께 일해본 영국 최고의 비밀 요원과 그가 목숨을 바친 무고한 여성의 목숨을 앗아갔다."

주인공은 어느 날 영국 정보부에서 뜻밖의 호출을 당한다. 냉전 시대 '윈드폴' 작전에 투입됐다가 사망한 요원의 유족이 정보부를 상대로 뒤늦게 소송을 제기한 것. 정보부는 그 당시 문서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주인공을 소환해 진상 조사에 들어갔다. 그 과정을 통해 이 소설은 냉전 시대의 첩보전을 재조명하면서, 스파이의 삶을 되돌아본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당신들 스파이는 전부 그래. 당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멍청한 게임을 하는 멍청이들. 당신이 어둠 속에 사는 건, 망할 햇빛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야."

작가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반대해왔다. 이 소설 속의 전직 첩보원은 "난 유럽인일세.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럽을 어둠 속에서 데리고 나와 새로운 이성의 세계로 인도하겠다는 이상이었고, 난 지금도 그 이상을 품고 있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