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남성 A씨는 2년 전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그러자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 여성 변호사를 찾아 사건을 맡겼다. A씨는 “여성 변호사라서 툭 까놓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망설였지만, 피해자와 같은 성별의 변호사가 상황을 더 잘 대처할 거 같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성범죄와 관련된 고소·고발이 늘면서 바빠진 사람들이 있다. 여성 변호사다. 이들이 성범죄를 더 세심하게 다룰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여성 변호사들은 성범죄 혐의를 받는 남성들이 자신들을 찾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우선 여성 변호사가 피해 여성과 합의를 하는 데 더 유능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송희라(33) 변호사는 "피해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가해자를 대신해 사과하는 뜻을 전하는 데 남성보다는 여성 변호사가 더 잘할 거 같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 변호사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남성들을 더 잘 챙기고, 안정감을 준다는 점이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채다은(38) 변호사는 "남성들은 성범죄로 고소를 당하면 곧바로 멘털이 무너진다"며 "이런 와중에 여성 변호사가 좀 더 세심하게 변호해주는 방식이 어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 남성을 대신해 여성 변호인이 '무죄'를 주장할 경우, 제삼자가 보기에 좀 더 타당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다.

여성 변호사가 실제 성범죄 재판에서 유리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 지역에서 일하는 한 남성 판사는 "가해 남성의 변호인이 남성인 경우 피해 여성에게 '성기 모양이 어땠냐'는 등 다소 과격한 질문을 하다 보면 피해자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울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남성 가해자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여성 변호사가 낫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형사사건을 담당했던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여성 변호사가 좀 더 세심하게 변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형량이나 유무죄를 가르는 판단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어려움도 있다. 피해 여성 측에서 증거로 제시한 동영상이나 사진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민망한 장면을 봐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민경(40) 변호사는 "신입 시절 선배 지시에 따라 성범죄 사건을 맡아 한 음란사이트에 올라온 연인 간 성관계 동영상을 보게 됐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당수 여성 변호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채다은 변호사는 지난달 중순, 수도권 지역에 있는 한 검찰청 조사실에서 남성의 성기가 버젓이 나오는 동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의 옆에는 검사와 수사관, 그리고 30대 남성 A씨가 있었다. 그를 제외한 세 명은 모두 남자였다. 채 변호사가 남성들과 함께 이 영상을 본 이유는 A씨를 변호하기 위해서였다. A씨는 전 여자친구로부터 "내 동의 없이 성관계 영상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자 채씨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채 변호사는 "영상이 촬영된 각도나 대화 내용이나 분위기 등을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에 따라 A씨가 무혐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꼼꼼히 보고 들어야 한다"며 "남자 산부인과 의사가 여성 임신부를 상대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민경 변호사도 "초창기에는 다소 당황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내 일이 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성범죄에 휘말린 남성들은 대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성 변호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보라(35) 변호사는 “성범죄라는 특성상 쉽게 지인에게 털어놓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 타운 일대에서는 ‘마케팅펌(마케팅+로펌)’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성범죄 건을 수임하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강제추행’ 등과 같은 키워드를 치면 검색될 수 있는 온라인 광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로펌을 뜻한다. 만약 특정인이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해당 로펌 홈페이지에 접속할 경우, 로펌은 접속 한 건당 포털사이트에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성범죄 사건의 착수금은 대체로 벌금형 이하인 사건은 약 550만원, 징역형 이상인 사건은 약 770만원에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