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충정로역 인근 아파트에서 친구와 자취하는 직장인 A(28)씨는 최근 집 근처 새로 지은 '역세권 청년주택'에 빈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웬 떡이냐' 싶었다. 서울시가 '청년 주거 안정'을 내걸고 벌이는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임대료가 주변 시세보다 최대 40% 싸다"고 홍보해, 입주자 모집 경쟁률이 수십~수백 대1까지 치솟았을 정도여서다. 하지만 A씨가 공인중개사무소에 들어가 "청년주택 빈집이 있다던데…"라고 말을 꺼내자,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월세가 싼 것도 아닌데 굳이 왜 이미지도 별로인 임대 주택에 들어가려 해요?"라고 물었다.
따져보니 그랬다. A씨가 지금 사는 16평 아파트는 일반 민간 시장에서 월세로 구한 것인데, 냉장고·세탁기·에어컨이 기본으로 갖춰져 있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 68만원이다. 그런데 비슷한 입지, 비슷한 면적(14.7평) 청년주택은 보증금이 9880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는데 월세가 72만원으로 오히려 비싸다. 게다가 가전제품이 아예 없다. 대신 냉장고·세탁기·에어컨을 유료로 렌털해주는데, 가장 싼 제품만을 선택해도 비용이 매달 10만7000원씩이다. A씨는 "그 좋다는 청년주택에 왜 공실이 나는지 이제 알겠다"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건설하는 '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이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관청이 임대료를 규제하자, 민간업자가 '꼼수'로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역세권 청년주택' 계획은 2016년 발표됐다. 2022년까지 역세권 목 좋은 자리에 임대주택 8만가구를 만들어 19~39세 청년에게만 빌려주는 게 골자다. 세금 대신 민간 자본을 활용한다. 민간업자들에게 역세권에 주거 시설을 대규모로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대신, 해당 주거 시설의 20%는 기부채납 받아 서울시가 직접 시세 60~80% 임대료의 '공공임대'로 빌려주고, 나머지는 민간업자가 '공공지원 민간임대'라는 이름으로 빌려주도록 하되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95% 이내'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두 방식을 통칭해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부른다.
초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간 다섯 번의 청약에서 공공임대 경쟁률은 최대 345대1까지 치솟았고, 공공지원 민간임대도 평균 10대1을 넘겼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곳곳에서 계약이 미달되고 있다. 공공지원 민간임대가 문제였다. 장한평역 청년주택의 경우 2019년 11월 청약에서 118가구 모집에 1082명이 청약(9대1)했지만, 올해 3월 본계약에선 당첨자 80%가 입주를 포기했다. 다른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 관계자는 "단지별 평균 공실률이 40% 정도"라고 했다.
가장 큰 원인은 가격인데, 민간업자들이 '옵션 꼼수'를 통해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예컨대 롯데자산개발은 서울시내 5곳에 '어바니엘'이라는 브랜드로 주택 임대 사업을 하면서, 청년주택인 '어바니엘 충정로'에만 기본적인 가전제품을 빼는 식으로 가격 제한을 회피하고 있다. 숭인동 동묘역 앞 청년주택 '영하우스'도 마찬가지다. 호텔을 고쳐 청년주택으로 만들었는데, 침구와 옷장 등 가구 렌털료와 조·석식비 19만2000원을 포함해 옵션비로만 총 27만9000원을 받았다. 뒤늦게 이를 확인한 당첨자가 대거 입주를 포기하면서 초기 계약률은 20~30%에 그쳤다. 이후 영하우스는 카펫을 뜯어내고 옵션비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업자들은 "20%를 기부채납하고도 수익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 자선사업은 아니지 않으냐"는 입장이다. 롯데자산개발 관계자는 "지금 같은 임대료에서 풀옵션을 제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업 참여업체 관계자도 "민간사업자 입장에선 거액을 투자해 아파트를 지어놓고 20%를 기부채납하는 데 이어 나머지도 싸게 공급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상태라면 청년주택 8만 가구 가운데 민간 임대분 6만여 가구는 골칫거리로 남게 된다. 시 관계자는 "임대료를 규제한 만큼, 나머지 문제에 시가 과하게 관여하긴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