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을 찾았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가 기획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생명공학·성소수자·혼종 등 대안적 미래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는 국내외 젊은 작가의 작품은 물론, 옛 건물을 고쳐 갤러리로 만든 통의동 보안여관과 창전동 탈영역우정국, 해방촌 독립 예술 공간 스페이스 원 등 국내 대안 공간으로 불리는 곳을 재해석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맞춰 2m 거리 계산에 따른 한정된 인원만 입장했고, 준비된 손 장갑에 소독까지 마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건물에 들어섰다. 여러 작품을 거쳐 마지막으로 만난 영국 작가 세실 B 에반스의 'What the Heart wants(마음이 원하는 것)'. 2016년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공개됐던 영상 설치작으로 미래에 '무엇'을 인간이라 칭할지에 대한 고찰이 담겼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의 전능한 시스템인 '하이퍼(Hyper)'는 얼굴이 뭉개진 여자로 형상화된다. 그녀는 로봇과 가상 캐릭터, 허공에 떠다니는 귀 등과 '무엇이 인간을 완성하는지'에 대해 논쟁한다.
토론 상대로 등장한 지구를 닮은 구형(球形)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겉에는 사람 한쪽 팔과 뼈처럼 보이는 촉수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방으로 솟은 팔은 서로를 잡으려야 잡을 수 없지만, 그 덕분에 적당한 균형감으로 부유(浮遊)한다. 그는 하이퍼에 건강과 안녕을 빌며, 결국 인간이란 '감정'을 갖고 표현하는 존재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한다.
인간의 형상은 아니었지만, 인간 같은 감정의 전달이 가능했던 건 돌기처럼 달린 손에 있었다. 터치(touch). 마이애미 의대 티파니 필드 박사가 뉴욕타임스에 밝힌 바에 따르면 터치는 태어나 우리가 가장 처음 배우는 언어이자 가장 심오한 언어라고 했다. 연대와 단합을 끌어내기도 한다. 버클리 대학 켈트너 연구팀이 미 NBA 농구팀의 경기 중 신체 접촉에 대해 연구했는데, 하이파이브 등 동료끼리 자주 접촉할수록 승률이 높았다. 한마디로 '터치의 힘'이다.
세실 B 에반스의 영상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촌 출신 디자이너 마수드 하사니의 'Mine kafon(마인 카폰·2011)'을 상기시켰다. 커다란 공 모양의 괴생명체 같은 이 작품은 플라스틱, 고무, GPS가 설치된 대나무를 이용한 지뢰 제거 장치다. 지뢰밭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었다. '터치의 힘'. 하사니는 '터치'로 생명을 앗아가는 잔혹한 전쟁 속에서 사람을 감화(touch)시키는 진정성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이 됐다.
두 작품의 외관은 전 세계를 공포와 불안으로 뒤덮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언뜻 닮아있다. 왕관 같은 돌기를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의 터치가 늘어날수록, 사람 간 터치는 사라졌다. 모르는 이를 향한 포옹으로 현대인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프리허그(free-hug)'가 유행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누군가의 접촉이 두렵게 느껴질 정도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를 유발하는 성(性) 범죄적 터치까지 떠올리니, '터치의 종말'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트롯맨들이 전화로 팬을 만나는 TV조선 '사랑의 콜센타'를 켰을 때다. 서울 개화동에 산다는 81세 김정렬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국에 흐른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신청한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는 열네 살 정동원의 깊고 담담한 목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터치의 힘'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