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유통·소매 기업인 이온(AEON)이 지난 1월 23년 만에 사장 교체를 발표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94년 역사의 이온그룹에 첫 비(非)창업가 출신인 요시다 아키오(吉田昭夫) 사장 체제가 막을 올린 것이다. 이온의 경영 수장 교체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그대로 반영됐다. 창업가 출신으로 지난 1997년 취임해 23년 동안 이온그룹을 이끌어온 오카다 모토야(岡田元也) 전 사장(현 회장)은 "(이온이) 지나치게 덩치가 커지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주저해 사업 기회를 잃는 사례가 많아졌다"면서 사장 교체 이유를 밝혔다.

이온(AEON)의 요시다 아키오 신임 사장이 지난 1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평사원 출신인 그는 디지털 혁신으로 유통업 부활을 꾀하고 있다.

1758년 옷감과 장신구를 팔던 상점으로 출발한 이온은 일본을 대표하는 장수 기업 중 하나다. 이온의 지난해 매출은 8조6042억엔(약 98조4802억원)으로 지난해 한국의 대표 유통 기업인 롯데(한국롯데지주·8조8562억원)의 11배 이상이고 수퍼 부문 매출도 6조2948억엔(약 72조원)으로 롯데마트의 매출(6조3306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온은 대형 쇼핑몰과 수퍼 체인을 비롯해 편의점 '미니스톱'과 드러그스토어 '웰시아' 등으로 일본 유통 업계를 평정하며 업계 2위인 세븐앤드아이홀딩스와 함께 양대 유통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요시다 사장은 1983년 이온의 전신인 저스코(Jusco)에 입사했다. 그는 지난 1월 10일 사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소매 현장 경험을 경영 판단에서 최대한 살리고 성장 모드 전환을 위해 과감히 결단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일본 최대 유통 제국인 이온을 이끌어 갈 그가 마주한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쇼핑 확대와 장기 소비 침체, 소비 기반인 인구의 지속적 감소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그의 경영 능력은 시험대에 올랐다.

"첫째도 디지털, 둘째도 디지털"

요시다 사장은 취임 후 "첫째도 디지털, 둘째도 디지털"을 강조했다. 신성장 동력인 온라인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 본업인 유통업 부활을 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그는 사장 취임 전까지 이온그룹의 디지털사업 총괄책임자로 전자상거래 부문을 이끌어왔다. 이온은 지난 2017년 뒤늦게 오프라인 점포 확충에 치중했던 투자를 정보기술(IT)·디지털·물류 세 기둥으로 옮기는 중장기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듬해인 2018년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물류 시스템을 가진 미국 스타트업 박스드와 독일 스포츠 제품 전자상거래 기업에 출자하고 중국 AI 기업과 합병회사를 설립하는 등 전자상거래 사업 모델 구축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해 4월에는 중국 항저우에 DMC(디지털매니지먼트센터)를 설립해 IT 인재 육성에도 나섰다. 얼굴 인증 기술로 신규 회원을 등록하는 스마트폰 앱 개발 등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는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일본은 그동안 인터넷 수퍼의 무풍지대로 여겨져 왔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일본 식품 부문의 거래 총액에서 전자상거래 비율은 2.64%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온라인 신선 식품 배달 서비스인 아마존 프레시를 선두로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일본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면서 전통 오프라인 유통 기업인 이온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이온 수퍼 체인의 최대 경쟁 업체인 세이유도 일본 최대 IT 기업인 라쿠텐과 인터넷 수퍼 사업 전용 출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매출이 30%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신도심에 위치한 종합쇼핑센터 ‘이온몰’의 내부 모습.

英 오카도와 손잡고 물류 혁신

이에 반해 이온의 온라인 사업 부문 부진은 뼈아프다. 2008년 자회사인 이온리테일의 수퍼 매장 200여곳을 통해 인터넷 수퍼를 운영 중이지만 매출은 이온그룹 전체의 1%대로 저조하다. 본업인 다이에와 마루에쓰 등을 거느린 수퍼 사업도 영업이익률이 0.4%에 불과해 저채산 사업으로 전락한 상태다. 지역 수퍼 체인과의 출혈경쟁과 인건비 상승으로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시다 사장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물류 인프라를 구축, 인터넷 수퍼 사업의 매출을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한 핵심전략 중 하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온라인 유통 부문 신흥 강자인 영국 오카도(Ocado)와의 사업 제휴다. 이온은 2023년 일본에 오카도의 기술을 접목한 인터넷 주문 전용 자동화 창고를 도입, 주문이 들어오면 가장 빠른 경로로 고객에게 배송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배송센터에서 집중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저비용 경영 모델로의 전환을 노리고 있다. 오카도와의 교섭을 주도한 건 요시다 사장이다. 그는 지난해 런던을 방문해 오카도의 배달 차량에 동승, 인공지능을 접목한 첨단 무인 배송 시스템을 확인했다. 오카도의 물류 시스템으로 주문 후 창고에서 출고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장 15분으로 경쟁 물류 업체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지정 시간 내 배송률 95%, 자동 피킹 정확도도 98.8%였다. 이런 혁신적 기술에 매료된 그는 오카도를 과감히 사업 파트너로 선택했다. 오카도 관계자도 "일본은 세계에서 넷째로 큰 식료품 시장"이라며 이온과의 제휴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요시다 사장은 2030년까지 온라인 수퍼 매출을 6000억엔(약 6조8800억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원스톱형 쇼핑센터 만들어 차별화

요시다 사장은 온라인 쇼핑의 대세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오프라인 매장처럼 이온이 가진 자원과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매장이 가진 강점을 부각해 고객의 발길을 돌릴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온은 최대 경쟁 무기인 대형 쇼핑센터 '이온몰'을 내세우고 있다. 쇼핑몰을 포함한 부동산 부문은 지난해 이온그룹 전체 이익의 29.4%(632억엔)를 차지해 오프라인 소매유통 부문 중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이온은 일본에 165곳, 베트남 등 해외에서 30곳의 이온몰을 운영 중이다.

요시다 사장은 상품과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지역 밀착형 교외 쇼핑센터로 온라인과 차별되는 부가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내년 가을 아이치현에 새롭게 문을 여는 쇼핑센터는 이온의 대표적인 야심작이다. 쇼핑몰 안에 공유 사무실과 병원, 운동 시설, 문화센터를 한 층에 한꺼번에 입점시킨 원스톱 시설로 다양한 고객층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온도 쇼핑센터 사업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온은 최근 사업 보고서에서 "전자상거래 확대와 쇼핑몰 간 치열한 경쟁으로 쇼핑센터의 도태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요시다 사장은 "인터넷 부문이 커져도 이온을 찾는 내점 고객 수만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자신하고 있다. 그는 "각 지역의 수요에 맞춰 특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한다면 전체 소비 지출이 줄어들더라도 지역별로 이온의 소비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는 있다"고 강조했다. 잠재 고객 1억명이 이온을 찾을 요소를 갖춘다면 오프라인 점포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요시다 사장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