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 컬처엔지니어

# 로이드 이스트먼(Lloyd Eastman)의 저서 ‘蔣介石은 왜 敗하였는가’(지식산업사)를 다시 꺼내 읽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민두기 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역자 머리말에서 “공산당이 국민당 정권을 멸망시킨 것이 아니고 국민당 정권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고 이 책의 결론을 압축 지어 말했다. 그렇다! 70여 년 전 중국 대륙에서 장개석(장제스)의 국민당은 모택동(마오쩌둥)의 공산당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너졌다. 이것이 로이드 이스트먼이 진단한 장개석 패인의 핵심이다. 이 핵심 결론은 놀랍게도 2020년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래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 이스트먼의 저서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의 원제목은 '파멸의 씨앗(Seeds of Destruction)'이다. 이스트먼은 특히 9장 '누가 중국을 상실하였는가?'에서 장개석의 육성을 통해 파멸에 이른 씨앗들을 낱낱이 들춰냈다. 들어 보라. "솔직히 말해 오늘날의 우리처럼 노후하고 퇴폐한 정당이란 있어 본 일이 없다. 얼이 빠져 있고 기율이 없으며 더 나아가 오늘의 우리처럼 옳고 그른 기준이 없는 정당도 있어 본 적이 없다. 이따위 당은 오래전에 부서져 쓸어 버려야 했다." 1948년 1월 장개석이 자신의 국민당을 향해 한 말이다. 하지만 마치 작금의 미래통합당을 겨냥해 한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 전략적인 우세가 모택동의 공산군 쪽으로 기울며 연전연패하자 장개석은 분통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떤 면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물자 면에서 우리는 좋은 장비와 우수한 무기를 갖고 있다. 군대의 장비는 물론 전투 기술, 경험이라는 점에서 봐도 공산군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식량, 탄약 등의 군사적 공급과 보충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공산군보다 열 배나 더 풍부하다. 승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계속 패배하는가?" 이 물음은 곧 2020년 한국 보수의 물음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의 참혹한 경제 실정과 조국을 등장시킨 결정적 헛발질의 후속 국면으로 국민적 분노가 분기탱천했던 정국임에도 불구하고 왜 보수는 패했는가? 코로나 때문에? 돈 살포 때문에? 그것만은 아니다!

# 1947년과 1948년에 걸쳐 장개석은 파멸의 씨앗, 즉 패배의 근본 원인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했다. 1947년 6월, 그는 이렇게 고백하듯 말했다. "지휘관 대부분의 정신은 무너져 있고, 그들의 도덕성은 야비하기까지 하다. 아무도 이론이나 작전 전범을 연구하지 않는다. 적정(敵情)이나 적진 지형을 정찰하는 데는 더 무관심하다. 작전 계획을 아무렇게나 세우고 명령도 되는 대로 내려 버린다. 세심하게 검토도 하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하지도 않는다. 머리를 쓰려 하지 않고 연구를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떤 문제건 건성건성 보고 철저하게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다. 행정은 되는 대로이고, 피상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이 코로나로 인해 덮여 버려서, 또 긴급재난지원금 운운하며 각종 돈 살포 계획을 떠들어 대고 아동수당 등을 선거 직전 일거에 지급해서 선거에 폭망한 것만은 결코 아니다. 물론 그것도 큰 원인일 수 있겠으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공천을 넘어선 막천 파행과 국민 눈높이에 못 맞춘 말실수 및 막말의 연속타에서 드러난 국민 감성의 부재, 아울러 코로나와 돈 선거에 대항하는 전략적 메시지의 실종 때문 아니었던가! 한마디로 도저히 찍고 싶은 마음이 안 들게 만드는 신묘한 기술을 미래통합당은 장착하고 있지 않았던가!

# '장개석 군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개판'이란 뜻이다. 장개석의 비판을 더 들어 보자. "우리 군대 안에 도사린 타락과 부패가 실로 기가 막힌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군대는 전투 정신도 기율도 없는 얼빠진 것이었고 무능하고 비협조적인 지휘관으로 병들었다. 이런 군대는 패배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장개석의 개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휘관 개개인을 향한 장개석의 비판은 더 신랄해진다. "오늘날 군사령관이나 사단장 노릇을 하고 있는 너희가 만약 다른 나라 같았으면 연대장 노릇도 못 할 것들이다. 인재가 없기 때문에 너희는 쥐꼬리만 한 능력을 갖추고도 그런 큰 책임을 맡고 있는 것뿐이었다." 장개석은 휘하 장교들을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장교들은 병사들에게 식량, 피복, 의료 혜택 등을 적절하게 공여하지 않고 부하에게 배당된 보급품을 착복하기까지 한다. 장교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자세는 병사와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입고 병사들의 병영에서 함께 기거하는 일이다. 공산군의 장교들은 이미 이 일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 그들의 경우 장교와 병사 간에는 생활 처우의 차이가 없이 단지 기능의 차이밖에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부군(국민당 정부의 군대)의 경우 병사들에 대한 대우로 봐서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도망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정도다."

# 통합당을 바라보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같은 눈높이,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도저히 안 들게 하지 않는가! 70여 년 전 장개석의 피눈물 나는 자책을 더 이상은 흘려듣지 말라! 작금의 미래통합당은 보수의 중심이 아니다. 보수 역시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니다. 지금이 비대위 하나 제대로 옳게 세우지 못하면서 자리싸움, 샅바 싸움 할 때인가. 철저하게 반성하고 성찰하며 새 길을 찾아보겠다고 동분서주해도 모자랄 판에 지난 보름 동안 미래통합당 안팎에서 보여 준 모습을 보라! 국민이 마음을 주겠는가? 당선자 대회니, 전국위니, 비대위니 소란 떨기 전에 먼저 대오각성하고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하는 게 순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