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맞아 새롭게 출시된 몰스킨의 주간·월간·일간 다이어리.

고흐, 피카소, 헤밍웨이. 당대 최고 예술가인 이들은 미색 속지와 검은색 두꺼운 커버로 덮인 수첩(notebook)을 즐겨 썼다고 한다. 모서리가 둥근 이 수첩은 겉모습이 흡사 두더지(mole) 가죽(skin)처럼 생겼다고 해서 몰스킨으로 불렸다. 원조는 19세기 프랑스. 1986년 이 수첩을 만들던 프랑스 장인(匠人)이 세상을 떠나면서 명맥이 끊기는가 했는데 이탈리아 사업가 프란체스코 프란체스키와 마리오 바루치가 1997년 모도앤모도(Modo & Modo)라는 회사를 세우고 몰스킨(Moleskine)을 다시 선보였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몰스킨은 바로 이 이탈리아 브랜드다.

몰스킨은 단지 수첩이 아니다. 제품에 스토리를 입혔다. ‘예술가들의 아이디어 수첩’ ‘아직 쓰이지 않은 책’ ‘현대 유목민’이란 선전 문구는 마치 몰스킨 수첩을 쓰면 다양한 지식 창조자들과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을 준다. 몰스킨 수첩에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가 붙어 있으며, 몰스킨이 겨냥하는 고객층은 18~55세 나이 건축가나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또는 전문직 비즈니스맨이다.

세계 곳곳에 몰스킨 팬을 자처하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열혈 애호가들이 수두룩한 가장 큰 요인은 프랑스 장인이 만든 수첩을 최대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려는 노력 덕분이다. 몰스킨 수첩 디자인에는 고유 스타일이 있다. 속지는 양가죽, 고무 밴드로 봉인하고, 뒤표지 안쪽에 주머니를 단다. 프랑스 원조 원형을 최대한 살린 형태다. 여기에 휴대성과 편의성을 강조하는 현대인 취향에 맞춰 일반 가방에 들어가는 사이즈부터 외투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까지 다양하다. 회사원과 학생, 예술가 등이 주 고객층으로, 다른 브랜드의 다이어리, 공책, 수첩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고급 이미지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꾸준히 매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비용 절감을 위해 양가죽 대신 질긴 면직물을 쓰고, 생산지도 터키나 중국·베트남으로 다변화했지만 단순하고 담백한 디자인만큼은 고수하고 있다. 몰스킨이 종종 애플과 비교되는 이유다. 한정판(limited edition) 마케팅을 자주 벌이는 것도 몰스킨 수첩 가치를 차별화하는 요소다. 스타워즈에서 배트맨,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헬로키티, 미키마우스, 스타벅스까지. ‘나만의 몰스킨’을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고 남들과 다른 몰스킨을 소유할 기회도 널려 있다. 수첩 팔아서 연 1억7410만유로(2300억원·2018년 기준) 매출을 올리는 비결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으면서 종이 시대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득세하자 몰스킨도 새로운 적응법을 모색하고 있다. 종이 위에 쓴 내용을 디지털로 저장할 수 있도록 한 스마트 라이팅 세트나 몰스킨 전용 앱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이를 위해 IT기업 에버노트·어도비와 손을 잡기도 했다. 몰스킨 제품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몰스킨 카페를 열기도 했다.

아리고 베르니 몰스킨 이사회 의장은 “창작의 세계에선 ‘종이냐, 디지털이냐’를 고민하지 않고, 둘 다 포함하는 선택을 한다”면서 “우리는 종이 시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내면)을 표현하는 도구를 찾는 과정을 지원한다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