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개미(개인 투자자)들이 몰려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랐던 '원유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이 거래 정지 후 매매가 재개된 첫날 폭락세를 보였다. 거래가 중단된 동안 유가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데다 기초 자산(유가)과 시장 가격(ETN 주가) 간 괴리율이 치솟자 부담을 느낀 이들이 대거 매도했기 때문이다. 원유 레버리지 ETN은 수익률이 국제 유가 등락률의 2배로 움직이는 초고위험 상품이다. ETN은 특정 테마의 주식 또는 상품을 묶어서 만든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상장지수펀드(ETF)와 비슷하다.
◇거래 재개되자마자 -60% 하한가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원유 레버리지 ETN 4종 중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등 2종의 주가는 각각 835원과 500원에 마감하며 전 거래일 대비 60% 떨어진 하한가를 기록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종목은 일간 주가가 전 거래일 대비 -30%(하한가)부터 +30%(상한가) 사이에서 움직일 수 있는데 레버리지 상품의 상·하한가는 이 범위의 2배인 -60%, +60%다. 두 ETN은 투기 수요 탓에 한때 괴리율이 최대 1000%(10배)가량 벌어졌는데,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지난주(20~24일) 두 ETN의 거래를 정지했다. 27일은 일주일 만에 두 ETN의 거래가 재개된 날이었는데 개장 직후 주가가 곤두박질치더니 이후 회복되지 못했다. 거래 정지 직전인 지난 17일 두 ETN을 매수했던 투자자는 1거래일 만에 60% 손실을 기록한 셈이다.
지난 23~24일 거래가 정지됐던 다른 2종의 원유 레버리지 ETN 주가도 폭락했다.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과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은 이날 각각 310원(-52.3%)과 1270원(-20.6%)에 마감했다. 레버리지 ETN뿐 아니라 일반 원유 선물 ETN들의 주가도 이날 10~20%가량 떨어졌다.
◇마이너스 유가 겪은 뒤 극도의 공포
이날 원유 레버리지 ETN의 폭락은 유가가 급전직하하던 상황에서도 관련 ETN을 사모으던 개미들의 기존 매매 패턴을 생각하면 의외였다. 지난주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이 3거래일 연속(22~24일) 상승했음에도 ETN을 팔아 치운 것이다. WTI 선물 가격이 3거래일 연속으로 상승한 것은 지난달 23~25일 이후 한 달만이다. ETN의 지표 가치가 폭락해 증권이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처할 때는 아무리 경보음을 울려도 매수에 열을 올리더니 최근 반등세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주 거래가 정지돼 있는 동안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사태가 일어나는 등 투자자들의 공포 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삼성증권 전균 수석연구위원은 "지난주 처분하고 싶었지만 거래 정지 탓에 팔 수 없던 물량이 대거 시장에 나왔다"며 "27일 WTI 선물이 다시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원유 생산 기업 투자가 나을 것"
거래소가 27일부터 종가 기준 괴리율이 30%를 넘는 ETN 및 상장지수펀드(ETF)를 3거래일간 거래 정지하기로 한 것도 이날 원유 레버리지 ETN 폭락에 영향을 줬다. 기존 괴리율이 수백%에 달하는 원유 레버리지 ETN들은 이날 괴리율이 아무리 많이 좁혀져도 거래 정지를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투자자들이 대거 매도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이날 원유 레버리지 ETN 4종의 괴리율은 69.1%에서 448.5%에 달해 향후 3거래일간 매매할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원유가 당분간 생산 대비 수요가 턱없이 적어서 유가 불확실성이 크고, 선물의 롤오버(선물 만기 연장) 비용을 감안한 총수익이 낮기 때문에 원유 관련 ETN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NH투자증권 황병진 연구원은 "원유에 투자하고 싶다면 유가 연계 상품보다는 원유 생산 기업 ETF 등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