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대인의 수난은 나치에 의한 것만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나라 없는 민족으로 3000년을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정착한 나라에 기여도 많이 했건만 어느 날 갑자기 추방령이 내려 즉시 재산을 챙겨서 언제까지 나가라거나 또는 재산까지 몰수당하고 추방당하기 일쑤였다. 개별적인 차별과 박해는 일상이었고 대규모 학살도 숱하게 당했다.

수많은 나라에서 전염병이나 천재지변, 흉작 등으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푼다든가 종교의식용으로 어린이를 살해한다는 따위의 소문을 퍼뜨려서 유대인을 민중 분노의 표적으로 만들었다. 1000년 가까이 자행되었던 유럽의 잔혹한 '마녀'사냥 ('witch'의 대다수는 여자였으나 남자도 적지 않았다)은 도전을 두려워하는 공권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선포하기 위해서 '악을 말살하는 위력'을 과시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역사상 모두 이런저런 집단 박해를 당해 보았다. 그런데도 유사한 가해자가 되기를 삼가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당이 압승한 바로 다음 날 "세월호 사고 원인을 철저히 밝혀내겠다"는 맹세(또는 위협)를 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온 천하가 아는 바와 같이 과적과 평형수 부족이었다. 과학적인 원인이 확인되었는데 '원인'을 밝히겠다는 것은 사실상 유대인, 마녀, 또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경기부천병 당선자의 어휘를 빌리면) '짐승'을 만들어 내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좌파가 북한의 온갖 만행에 대해서도 사용하지 않은 이 '짐승'이란 어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세월호 사고 발생 이래 불행히 자녀를 잃은 부모 중 상당수는 좌파에게 인질로 잡혀 몇 년이나 '애도'를 본업 삼기를 강요받았고 일부 정치인과 시민 단체는 세월호를 정치적 요술 방망이로 마구 휘둘렀다. 그렇게 해서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좌파의 배타적 특권이 되었고 우파는 추모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불가사의하게 '가해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노란 배지가 상장(喪章)이 아니고 도전장, 고발장으로 보이게 되었다.

이 좌파 정부는 세월호 사고의 원인에 대해 어떤 가설을 입증하겠다는 것일까? 나의 두뇌로는 추측이 안 되는 그 가설은 아마도 모든 우파를 일거에 '불가촉천민'으로 강등하기에 족한 것일 게다. 그 가설이 억지로 '입증'되는 날, 대한민국호(號)는 평형수가 완전히 고갈되어 전복되고 말 것이다.

※ 이 칼럼은 200회로 접습니다. 그동안 뜨겁게 성원하고 격려해 주신 독자 제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