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시간 vs 2시간30분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됐다 현재 잠정 중단된 백악관 코로나 대응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발언한 총 시간은 28시간으로 드러났다. 반면 ‘Mr 전염병 대통령’으로 불리는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의 발언 시간은 고작 2시간30분에 불과했다. 전문가는 들러리 세운 채 코로나 브리핑을 트럼프 대통령 자신의 독무대로 활용해왔음이 수치로 확인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현지 시각) 40여일간의 백악관 코로나 대응 브리핑의 녹취록을 입수해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코로나 대응팀원들의 발언 시간을 분석한 뒤 이 같이 보도했다. 백악관 코로나 대응 브리핑은 지난달 16일부터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데버라 벅스 백악관 코로나 태스크포스 조정관, 앤서니 파우치 소장 등이 참석해 거의 매일 열리고 있다.
WP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브리핑에 35차례 참석해 28시간 이상 발언했다. 이는 전(全) 인원 발언 시간의 60%에 달한다. 그만큼 다른 사람과의 격차도 압도적이다. 백악관 코로나 대응 총 책임자인 펜스 부통령의 발언 시간은 총 5시간30분이며, 벅스 조정관은 6시간이다. 미국 내 코로나 대응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파우치 소장은 브리핑에 22차례 참가해 불과 2시간30분만 발언했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 발언 시간 3분의 1 이상이 다른 사람에게 제기된 질문을 가로채 답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누군가를 공격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거나 자화자찬이 주를 이뤘다. WP가 지난 3주간(6~24일)의 코로나 브리핑을 집중 분석한 결과 13시간의 트럼프 대통령 발언 시간 중 2시간이 타인 공격, 자화자찬이 45분이었으며,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상황을 완전히 바꿔 놓는 것)’로 소개한 말라리아 치료제(하이드록시클로로퀸) 홍보에 약 10분을 소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빈번한 공격 대상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포함한 민주당 인사로, 총 48회에 걸쳐 30분 이상 비난을 날린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 매체(37회·25분), 각 주지사(34회·22분)가 그 뒤를 이었으며, 중국에 대한 공격도 31회(21분)에 걸쳐 나타났다. 지난 23일 코로나 브리핑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를 “집 지하실에서 졸기나 하는 남자”라고 비난하고, 미 주류 언론을 향해 “가짜뉴스”란 비난을 쏟아냈다.
자신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장면이나 민주당 주지사들이 자신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는 장면 등이 담긴 자화자찬 동영상은 3차례나 틀었다. 민주당 최대 수퍼팩 ‘프라이어러티 미국’(Priorities USA)의 가이 세실 회장은 WP에 “운이 좋으면 코로나 브리핑엔 10분 정도 되는 정보가 있고, 1시간 반은 자화자찬과 잘못된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내 코로나 희생자에 대한 애도는 4분30초에 그쳤다. 총 8차례의 브리핑에서 코로나 희생자에 대해 짧게 준비된 원고를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 지지세가 결집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코로나 브리핑 효과를 톡톡히 챙겼다. 그러나 연이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쏟아내고 최근엔 ‘살균제 주입 발언’ 등으로 역풍을 맞아 지난 24일엔 22분만에 브리핑을 끝내고, 25·26일엔 아예 생략했다.
연이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 헛발질에 공화당 안팎에선 “대선은 물론 상원의원 선거까지 패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일각에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을 과시하고 자신이 주장해 온 ‘전시 대통령’이 될 기회는 허비하면서, 사소한 싸움만 골라 유치하고 산만하게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고 WP는 전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화자찬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26일 “나를 알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역사상 가장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안다”며 “아마 첫번째 임기의 3년 반 동안 역사상 그 어느 대통령보다 더 많은 것을 이뤄냈을 것”이라고 자신을 칭찬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은 대통령이 대중에게 계속 정보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라며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매일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소식을 듣기 위해 채널을 맞추고, 그의 리더십과 전례 없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미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 있는 전망에 감사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백악관 코로나 대응 브리핑은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지난주 코로나 브리핑을 단축하거나 생략한 것처럼 브리핑 자체나 대통령 참석 횟수를 줄이고, 대통령의 야외 일정을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강점으로 꼽히는 경제를 부각하기 위해 그가 중소기업 경영진 등을 코로나 브리핑에 대동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WP는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