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1시. 서울 동작구 빌라촌 내 18평 투룸 반(半)전셋집 안방에서 휴대전화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태권도장 관장 김모(39)씨가 알람을 끄고 일어나,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갔다. 식탁 위 삶은 계란 두 알을 까먹고, 관원 아이들을 태워 주는 노란 승합차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향한 곳은 서울 양재동 쿠팡플렉스 물류센터. 센터 앞 도로엔 먼저 도착한 자동차 30여 대가 줄지어 대기 중이었다. 일일 물품 배송 아르바이트를 뛰려는 사람들이다.
새벽 2시 54분, 휴대전화에 '금일 물량 20건 이하'라는 쿠팡 측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밤새 배달해 봤자 3만원도 벌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자 김씨 앞에 줄을 서 있던 차량 10여 대가 대열을 벗어나 집으로 갔다. 김씨는 그러지 못했다. "두 딸과 아들을 생각하면 몇 푼이라도 벌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김씨 체육관에는 올 초만 해도 70명 가까운 관원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와 함께 급격히 줄어, 지금은 10여명이다. 이번 달 김씨 수입은 130만원. 월 200만원인 체육관 임차료가 석 달째 밀렸다. 승합차 운전기사가 따로 있었는데, 지난달 무급 휴가를 줬다.
이날 새벽 김씨는 방배동 일대로 가는 택배 열다섯 개를 받았다. 총 연장 20㎞를 돌며 배달을 마친 뒤 집에 들어섰을 때, 시계는 6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휴대전화 알람을 '오전 10시'로 맞추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 김씨 손에 쥐여진 배달 인건비는 '2만2000원'이었다.
폐업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배달 아르바이트 시장으로 쏟아지고 있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단기 알바를 포함한 취업자 수는 도매·소매업에서는 16만8000명, 숙박·음식점업에서는 10만9000명이 줄었지만 운수·창고업에서는 7만1000명이 늘었다. 택배 배달은 특별한 전문성이나 번거로운 채용 절차가 필요 없다. 그러다 보니 소비 위축과 급격한 최저임금·임차료 상승,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자영업자와 그 종업원까지 한꺼번에 배송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배달 인력 공급이 수요를 한참 초과하면서 배달원 인건비는 건당 2000원에서 최근 1년여 사이 850원까지 떨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 위기는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제도 등 악재가 누적된 상태에서 코로나를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접근으론 해결 불가"라고 했다.
서울 양재동 쿠팡플렉스 물류센터 앞 도로에는 밤 11시 30분 무렵부터 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다음 날 오전 2시 30분 시작되는 배송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려는 차들이다. 23일 오전 0시 30분쯤 대기 행렬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그러자 차량 한 대에서 50대 남자가 내리더니, 짬뽕 한 그릇을 받아서 차 안으로 돌아갔다. '식당 주인'이라고 밝힌 그는 "어제 제시간에 나왔더니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오늘은 3시간 일찍 나왔다"고 했다. 새벽 1시가 되자, 대기 차량은 80여 대로 늘었다.
쿠팡플렉스는 배달원이 원하는 시간대를 골라 배송 일을 하고, 건당 인건비를 받는 구조다. 배송 인건비는 배송 물품의 내용과 그날 인력 사정 등에 따라 달라진다. 재작년 12월 건당 대략 2000원 정도였지만, 코로나 사태를 거친 지금은 주간 850~950원, 야간·심야 1050~1150원 정도다.
오전 2시 30분쯤 이곳에서 만난 김모(38)씨는 지난주까지 구로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했다. 코로나 사태로 월세 200만원과 직원 한 명 월급 200만원을 줄 수 없어 결국 휴업했다. 그는 "소상공인 긴급 대출 2500만원을 받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했다. 김씨는 전날엔 주간과 야간 '두 탕'을 뛰며 총 48건을 배송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에 10~20㎏짜리 물·쌀 등을 배달했고, 총 운전 거리는 85㎞, 총근무시간은 8시간 30분이었다. 그러고 6만원을 받았다. 시간당 7059원꼴이었다. 김씨는 "최저임금 수준도 안 될 때가 많지만 안 버는 것보단 낫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국숫집 주인 김모(56)씨는 3월 말부터 '남의 가게 음식'도 배달한다. 직원 세 명에 알바생 한 명을 쓰는 김씨는 "하루 열 건 정도 다른 음식점 배달도 한다"며 "이렇게 하면 5만원 정도 버는데, 알바생 한나절 인건비는 된다"고 했다.
택배 차량에 물건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 업무', 주소에 따라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업무에도 자영업자가 몰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본지가 수도권 배송 관련 인력 업체 20곳에 전화를 돌려 '코로나 이후 지원자가 얼마나 늘었느냐'고 물었더니, 가장 적게 부른 곳이 "2배"였고, "5배"라고 답한 곳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