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에서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내며 경제개발을 주도한 김정렴(96)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오후 10시 별세했다. 김 회장은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지내고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비서실장을 맡았다. 김 회장의 비서실장 재임기간 한국 경제는 중동 진출과 중화학공업 건설, 부가세 도입과 고속도로·대덕단지 건설 등 고도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난 2011년 12월 5일 연간 무역규모 1조달러 돌파를 기념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 회장은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논산에서 자라며 강경상업학교와 일본 오이타고등상업학교(大分經專)를 졸업했다. 1944년 한국은행 전신인 조선은행에 입행했다. 그 직후 강제 징집돼 일본군에 배속된 뒤 히로시마(廣島)에서 일제 패망을 맞기도 했다. 김 회장도 당시 원폭 피해를 입었으며 후유증을 겪었다.

그는 해방 후 한국은행 시절이던 1953년 29세의 나이로 1차 통화개혁을 전문(全文) 기안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1959년 재무부로 옮긴 이후에는 이재국장·차관, 상공부 차관 등 정통 경제관료 길을 걸었다. 한일회담 대표위원에 이어 1966년 재무부 장관, 1967년 상공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역대 정부 최장수 비서실장을 거쳐 1980년 8월 주일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약 2년간의 공백을 제외하면 총 34년간 중앙은행과 행정부에서 공직을 맡았다. 1999년부터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이사, 2007년부터 사업회 회장을 맡아왔다.

1969년 3선 개헌안이 통과되고 정일권 내각이 새 체제를 위해 일괄사표를 제출한 직후, 박 대통령이 상공부 장관이던 그를 청와대로 불렀다. 김 회장은 자신의 회고록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 청와대로 불려가 “각하,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릅니다.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고 경제가 잘돼야 정치·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면서 설득했다고 밝혔다.

고(故)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김 회장에 대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차지철과 김재규가 비서실장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2003년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내가 비서실장으로 일한 9년 3개월 간 박정희 대통령이 수석ㆍ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것은 10번도 안된다”면서 자신이 매일 수보회의를 열고 결과를 취합해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경제정책 수립과 추진에 관해선 경제관료의 전문성에 전적으로 맡겼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2011년 12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1965년 이후 14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135차례 수출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한 수출 총사령관이었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가 작아야 경제정책이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소신을 직접 실천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비서실장에 취임하자마자 시도한 일은 비서실의 축소였다”며 약 10명의 경제 관련 비서관을 감원하는 등 청와대 조직을 통폐합했다고 했다. 동시에 그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주요 장관들과 대통령 특보 후보감을 직접 물색해 발탁하고 임명을 건의하는 등 ‘실세 비서실장’ 이었다. 그는 “차관 이하 인사는 (청와대가 하지 않고) 장관들에게 일임했다”고 했다. 장관들이 소신있게 일할 때 경제정책이 관료들을 통해서 현장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 회장은 1960년대부터 수출입국·공업화 정책 수립에 참여한데 이어 중화학공업 건설과 방위산업 육성 등 산업 고도화 정책 수립과 실행을 주도했다. 박 대통령이 주력으로 추진한 농업개발·산림녹화·새마을운동과 고속도로 건설, 의료보장제도의 추진에도 관여했다. 쌀 자급자족 달성, 8·3 사채동결로 금융위기 극복, 부가가치세 도입,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대덕연구단지 건설 등도 그의 재임기간 이뤄진 일들이다. 대한민국이 1961년 1인당 국민총생산 89달러·전세계 101위 최빈국에서 18년 만인 1979년 국민총생산 1510달러·세계 49위 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김 회장이 경제 정책의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유족은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 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 현대그룹 연구원 회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8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서울추모공원. (02)3410-6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