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승’과 ‘참패’. 4·15 총선 성적표는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전국 지역구 253석 중 163석을 점령한 더불어민주당은 축배를 들었습니다. 84석에 그친 미래통합당은 ‘영남당’으로 쪼그라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의석수만 보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신문·방송에 등장한 전국 당선 지도를 보셨겠지요. 서쪽 넓은 지역이 파란색(민주당)으로 물들었습니다. 분홍색(통합당)은 부산·경남과 대구·경북, 강원 일부에 고립된 모양새였습니다.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에 분홍색이 드문드문 보이기는 했지만 "음식에 빛깔을 더하려고 살짝 얹은 고명 같다"는 감상평이 나왔습니다. 예컨대 서울에서 통합당이 이긴 지역구는 49곳 중 8곳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그래픽부터 보실까요. 이한상 교수가 민주당의 파란색과 통합당의 분홍색을 득표율에 따라 섞은 결과입니다. 당선을 기준으로 한 왼쪽 지도에서 서울은 용산·서초·강남·송파를 제외하고는 민주당이 싹쓸이해 파란색만 보일 테지만, 유권자가 던진 표를 전부 감안한 오른쪽 지도에선 완전히 다른 빛깔이 나타납니다.

보십시오. 파란색도 아니고 분홍색도 아닙니다. 둘이 섞인 보라색에 가깝습니다. 이한상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용산·서초·강남·송파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은 통합당 후보들과 초접전을 벌였고, 민주당 후보가 이긴 많은 선거구에서도 통합당 후보들이 무시하지 못할 표를 얻었다"며 "이 그림에서처럼 민심은 보라색이라는 게 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민주당의 파티를 망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파란색만 보고 그게 민심이라고 착각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49.9%(1434만5425표) 대 41.5%(1191만5277표). 전국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이 얻은 총 득표율입니다. 차이는 8.4%포인트밖에 안 되지만, 의석수는 2배 가까이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가 낳은 결과입니다.

부산에서는 서울과 정반대 결과가 나왔습니다. 민주당은 87만여 표를 얻었지만 3석에 그쳤고, 통합당은 104만여 표로 15석이나 차지했으니까요. 득표 비율은 46% 대 54%인데 의석 비율은 17% 대 83%로 확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에게 간 표를 사표(死票)라고 합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원호 교수는 "현재 선거제도는 1등에게 던진 표 외에 나머지는 다 사표가 되는 불비례성 문제를 안고 있다"며 "기존 당선 지도는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민심이 양분된 것처럼 착시효과를 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교수는 또 "유권자는 3등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에겐 투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한상 교수는 통합당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갈팡질팡 리더십을 보여주더니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 박근혜 사망선고 확인증을 접수해야 했다"고 평했습니다. 민주당엔 "승리의 환호작약을 멈추고 커다란 왕관의 무게를 느낄 시간"이라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준비 없이 국정을 접수한 후 경제는 기초체력 훼손이 있었고, 정치는 드루킹, 선거 개입, 측근 비리 옹호, 조국 사태, 선거법과 공수처법 엿 바꿔 먹기 등 최악이었으며, 북한 핵문제는 그대로입니다. 코로나19와 역대 최약체 야당 덕이 아니었다면 싹쓸이가 어려운 판이었죠. 운도 분명히 실력이지만 운은 자주 반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