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안병현

“아빠가 뽀뽀해도 될까?”

다섯 살 아들을 둔 직장인 김모(38)씨는 요즘 아들에게 뽀뽀하기 전 허락을 구한다. 최근 읽은 성교육 책에서 배운 내용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틈틈이 성교육 강의를 듣는다. 김씨는 "지난해 어린이집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국민 청원 글이 올라오고, n번방 사건 등이 터지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6세·2세 아들을 둔 배우 김효진씨도 지난 1월 소셜미디어에 성교육 강의를 듣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김씨는 "아직 어리지만 요즘 아이들이 빠르고, 나도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아주 유익하고 재미나는 강의였다"고 썼다.

요즘 사교육계와 서점가의 화두는 '성교육'이다. 성교육에 관한 책은 지난해 이후 30권 넘게 쏟아졌다. '어쩌다 어른' 등에 출연한 손경이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51) 대표의 성교육 강의는 유튜브 조회 수가 104만을 넘어선다. 최근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성 착취 영상을 찍어 텔레그램에 공유한 'n번방' '박사방' 등 성범죄 사건은 성교육 열풍에 더욱 불을 붙였다. 학교 교육, 대중 강연을 넘어 '성교육 과외'까지 등장했다.

초등학교 남녀 터치 금지(?)

지난해 10월, 이모(35)씨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이 남자의 성기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이를 설명하면서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라고 했다는 것. 이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왜곡된 성 정보를 배울까 봐 겁이 나, 담임선생님한테 얘기해서 그 아이와 멀리 떨어진 곳에 앉도록 했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 딸아이 키우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일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정모(33)씨도 최근 성교육을 시작했다. 정씨는 "'친한 친구여도 너를 허락 없이 만지려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며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방어적인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性) 문제에 대한 공포는 남자아이를 둔 부모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요즘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남자아이 부모들은 아이에게 두 가지를 당부한다고 한다. '여학생들과 몸으로 부딪치는 놀이는 하지 말 것.' '그래도 친한 여자 친구 하나는 만들 것.'

8세·6세 아들을 키우는 이한나(가명)씨는 "서로 자연스러운 장난이었다고 해도 (남자아이는)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방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여섯 살 둘째에게도 어린이집 여자 친구들을 만지거나 몸에 기대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의 '최근 5년간 전국 초·중·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 현황' 자료를 보면 초등학교 성폭력 심의 건수는 2013년 130건에서 2017년 936건이 돼 7배 이상 증가했다.

이씨는 "특히 남자아이는 (성폭력 등) 논란이 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제대로 자기 의견을 얘기하지 못해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며 "이때 옆에서 상황 묘사를 도와줄 수 있는 친한 여자아이가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데, 정말 아들 키우기가 어렵다"고 했다.

물론 여자아이보다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남자아이가 성폭력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성교육 '그룹 과외'도

부모들의 걱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 유행하는 '성교육 그룹 과외'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현재 초·중·고교에서는 연간 15시간 이상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학교는 기술·가정이나 생물 시간에 배우는 내용으로 이를 갈음하는 등, 수업의 양이나 질 모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지난해 12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정모(35)씨는 아들과 같은 반 아이 5명을 모아 성교육 그룹 과외를 시켰다. 비용은 1회 2시간, 30만원. 아이 몸에 털이 나는 등 2차 성징이 본격화하면서 과외를 결심했다. 정씨는 "아이 아빠는 바쁘고, 아무래도 이성(異性)인 엄마가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겠다 싶어 과외를 알아보게 됐다"며 "올해도 한 차례 더 과외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성교육 스타 강사 구성애(64)씨가 운영하는 '푸른 아우성'의 '소규모 맞춤 교육'은 학부모 사이에서 수강 신청 대란까지 일 정도로 인기다. 특히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을 둔 부모들의 문의가 많다. 최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경쟁률(?)이 많이 떨어졌지만, 평소에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된다.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4월 강의는 모두 마감됐으며, 5월도 일부 날짜는 벌써 예약이 찼다.

사설 성교육 업체인 '자주스쿨'도 n번방 사건 이후 소그룹 교육 관련 문의가 10배 이상 늘었다. 소그룹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주스쿨' 김민영 대표는 "같은 학년이라고 해도 아이마다 성에 대한 지식이 천차만별"이라며 "또 아이들은 어른보다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기도 하고, 특히 민감한 사춘기 시기에는 단체로 성교육할 경우 자신이 정말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부모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평소 알기 어려웠던 아이들의 성 지식이나 상태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추가 교육이나 상담 등이 필요할 경우, 재빠른 대응도 가능하다.

성교육 강사이기도 한 '질 좋은 책: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은 진짜 성교육' 정수연 작가는 "학교 강의에 나가서 고1 남학생에게 사전에 궁금한 내용을 적어달라고 얘기하면 성관계 시 체위나 오르가슴 등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온다"며 "이런 내용을 1년 내내 봐야 하는 학교 선생님에게 물어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아들·딸 성교육 지향점 같아야

손경이 대표는 "성교육 과외 열풍 등은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긴장감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약간 긴장감이 있어야 건강한 관계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손 대표는 "아들 가진 엄마와 딸 가진 엄마가 싸워서는 안 된다"며 "원칙적으로는 아들 성교육과 딸 성교육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간 우리 사회가 딸은 성폭력을 피하도록, 아들은 사고를 치지 않도록 조심시키는 식으로 교육해왔지만, 성에 대한 지식이나 성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에 남녀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아들·딸 모두 어릴 때부터 자기 몸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판단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정수연 작가는 "예전엔 부모들이 내 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만 했는데, 요즘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 차원에서 많이 교육하는 추세"라고 했다. 교육 내용 역시 달라지고 있다. 정 작가는 "과거에는 '소리를 크게 질러라' 등의 피해자 중심 교육이었다면 요즘에는 '노 민스 노(no means no)'를 넘어서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로 가고 있다"고 했다. '노 민스 노'는 신체적 접촉을 거절했는데도 상대방이 행할 경우 폭력으로 본다는 것이다. '예스 민스 예스'는 대답하지 않는 것도 반대 의사로 보는 것으로, 적극적 동의가 없는 행동에 대해 처벌할 수 있다고 본다.

정 작가는 "우리나라 성교육에서 고등학생은 입시 준비 등으로 거의 배제되고,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위주로 가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며 "성교육은 고등학생, 대학생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부부까지도 평생 필요하다"고 했다.

"뽀뽀해도 될까?"… 네 살 아이에게도 허락 구해야

자녀 성교육 이렇게 하세요

“우리 딸은 아직 잘 모르는데…. 괜히 일찍 시작했다가 역효과 날까 걱정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딸을 가진 부모들이 성교육을 앞두고 자주 하는 말이다. 손경이관계교육연구소 손경이(51) 대표는 “성교육에서 남녀의 시기 차이는 없다”며 “오히려 2차 성징으로 대표되는 몸의 변화는 여학생들이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 더 빠르다”고 했다. 손 대표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하는 법’, ‘움츠러들지 않고 용기 있게 딸 성교육 하는 법’, ‘아홉 살 성교육 사전’ 등의 성교육 책을 썼다.

성교육은 태어나자마자 시작해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성교육은 단순히 성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부모가 아이의 몸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네 살 아이에게 부모가 뽀뽀할 때 “뽀뽀해도 될까?”라고 허락을 구하는 것부터가 성교육이다. 아이는 이를 통해 자신의 성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리는 ‘자기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 자연스레 상대방 의사도 존중하게 된다.

특히 6세, 9세, 12세, 중2, 고2 무렵은 성교육을 꼭 해주는 게 좋다. 6세는 처음 성(性)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나이다. 9세는 유아기를 넘어 아동기로 넘어가는 시기로, 2차 성징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할 수 있다. 12세는 몸의 변화가 본격화된다.

일부 부모는 성교육이 괜히 성에 대한 호기심을 더 부추기거나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 걱정한다. 아이의 성장 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부모가 지레짐작으로 너무 많은 정보를 집어넣는 경우 그럴 수 있다. 이럴 때는 ‘핑퐁 대화’를 통해 아이의 단계를 알 수 있다. 탁구에서 공이 두 선수 사이에 오가듯, 부모가 아이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아이의 상황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다. 9세 무렵이면 이 핑퐁 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

부모가 성교육한다며 대뜸 성 얘기부터 꺼내면 안 된다. 일상 대화부터 시작하는 게 먼저다. 손 대표는 “아이와 다른 이야기는 얼마든지 하는데 성 얘기만은 어색하다고 하는 부모가 있다”며 “잘 들여다보면 부모가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작 아이는 부모와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기에 대한 명칭도 어릴 때부터 정확하게 쓰는 것이 좋다. 특히 딸은 성기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성에 대해 많이 알면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손 대표는 “성기에 대한 명칭을 정확히 사용해야, 성에 대한 주체성과 용기를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아들 성교육은 아빠가, 딸 성교육은 엄마가 해야 한다는 생각도 편견이다. 한 부모 가정 같은 피치 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엄마와 아빠가 함께 아이 성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딸도 아들도 상대의 성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목욕은 다섯 살 이후 아이나 부모가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느끼면 동성끼리 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