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에 완강히 반대해온 기획재정부가 총리실 압박에 결국 백기투항했다. 기재부는 23일 저녁 홍보담당관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들이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한 이후에도 기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당정청간 의견을 같이하겠다”고 했다. ‘재정 여력 유지를 위해선 소득 하위 70%만 지급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포기한 것이다.

기재부는 “기부금을 모으기 위한 법률 제·개정 등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부금을 모아 고용유지, 실직자 지원 재원으로 쓰는 절차를 특별법 제정이나 기존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23일 긴급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 방안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반발에 대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원한 하위 70% 지급안을 포기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100% 지급안을 수용하란 경고다. 정 총리는 전날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가 가능한 제도가 국회에서 마련된다면 정부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었다.

정 총리는 이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이 같은 공식 입장을 냈음에도 일부 기재부 공직자가 ‘당과 총리가 합의한 것이지 기재부는 상관이 없다’ ‘기재부는 입장이 변한 게 없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기재부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정부의 입장이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저의 이 같은 뜻을 기재부에 정확하게 전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반발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앞으로 각별히 유념하겠으며 직원들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고 총리실은 전했다.

정 총리의 직접 경고는 기재부의 반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여권(與圈) 내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는 “지난 며칠 동안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정부와 여당이 충돌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국민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며 “어제 청와대와 의견을 나누고 (홍남기) 부총리와도 상의해 고소득자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가 가능한 제도가 국회에서 마련되면 정부도 이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해 밝힌 것”이라고 했다. 100% 지급안을 수용하라는 뜻을 홍 부총리에게도 분명히 했다는 뜻이다.

당초 ‘소득 하위 50% 지급’을 주장했던 기재부는 총선 전 여당의 뜻에 따라 ‘소득 하위 70%’로 2차 추경안을 마련했다. 홍 부총리를 비롯한 기재부 관료들은 이를 다시 100%로 늘리면 3조원 정도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며 완강히 반대해 왔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국회에서 증액하려면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여당은 이런 기재부를 강하게 압박해 왔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1일 언론 인터뷰에서 “추가로 3조가량을 더 편성을 해서 집행하는 것 자체가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해서 이후에 어떤 긴급한 사태를 대응할 만한 여력을 없게 만든다라고 하는 분석에는 좀 동의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근형 전 전략기획위원장도 “기재부가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국회에서 정할 문제”라고 했다.

지급 지연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는 발언도 계속돼 왔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미래통합당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겠다’는 총선 약속을 지켜주기 바란다”며 “여야가 합의한다면 정부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통합당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런저런 핑계로 말 뒤집기를 하고 있어 대단히 유감”이라고 했고, 임종성 원내부대표는 “통합당은 제발 정신 차리길 바란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