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실패로 홍역을 치렀던 군에서 이번엔 군기 문란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병사가 야전삽으로 여성 중대장을 폭행하는가 하면, 부사관들은 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장성은 부하들을 동원해 '닭장'을 지어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19일 군기 문란을 지적하는 '지휘 서신'을 전군에 하달했지만, 군에서는 또다시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경기도의 한 육군 부대 소속 A 상병은 야전삽으로 여성 대위를 폭행하는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말 A 상병이 사격장 방화 지대 작전에 투입되면서 시작됐다. 사격장 방화 지대 작전은 사격장 내 수풀 제거 등을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A 상병은 수일째 작업이 계속되자 "힘들어 더 이상 못 하겠다"며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았고, 중대장인 B 대위가 불러 면담하는 과정에서 B 대위를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A 상병이 지난 1일 면담 과정에서 B 대위에게 '병력 통제가 너무 심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며 "B 대위가 타일렀지만, A 상병이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머니에 있었던 야전삽으로 대위를 내리치고 일부 목을 조르려 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 현재 A 상병은 특수상해 혐의 등으로 군 검찰에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경기도의 또 다른 육군 부대에서는 지난 17일 간부(대위)가 길가에서 만취 상태로 옷을 벗은 채 누워 잠을 자다가 행인 신고로 귀가 조치돼 육군이 경위 파악에 나섰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에는 같은 부대 소속 중위가 노래방에서 민간인 여성을 추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모두 코로나 사태로 회식이 금지된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 13일에는 관사에 닭장과 텃밭을 만들겠다며 장병을 동원한 현역 중장에 대한 제보가 접수돼 육군 감찰조사팀이 조사를 벌였다. 문제의 중장은 "낡은 관사에 지네 등 벌레가 자주 나타나 이를 퇴치하려면 닭이 필요하다"며 닭장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이 중장을 징계위에 회부한 상태다. 지난 3월에는 충청도의 육군 부대에서 남성 부사관들이 상관인 남성 장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군사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여기에 육군 현역 일병은 성(性) 착취물을 공유해온 텔레그램방의 핵심 관리자로 지목돼 구속됐고, 공군 현역 병장도 텔레그램방에 연루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정경두 장관은 이와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자 지휘 서신을 통해 "군 기강 문란 행위가 일부 발생했다"며 "규칙 위반 시 엄격하게 조치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군 수뇌부의 질책과 반성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정 장관은 경계 실패와 군기 문란으로 최근 1년간 공식 반성만 5번 했는데,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성과 보안을 강조하는 지침이 내려오는데 비슷하거나 형식적"이라고 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기강을 확립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책임 미루기에 급급한 군 수뇌부가 스스로 군 기강을 확립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군 안팎에서는 휴대전화를 전면 허용하고, 급여를 올려주는 등 '장병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사이 군기가 흐트러졌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