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가정의학과 교수·대한의사협회 코로나대책본부 전문위원

중국에서 발생해 한국으로 전파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대구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첫 사망자가 나온 지난 2월 20일,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새 학기 개학을 위해 돌아오는 중국인 학생 선별 진료에 나섰다. 밤늦게 대구에 도착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전염병의 숙주가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역병(전염병)은 오랜 세월 동안 타락에 대한 심판의 은유로 사용되며 외부의 사악한 기운이나 내면의 정신적 문제가 물리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수전 손태그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쓴 것처럼 질병은 침략이고 폭격이 되었다. 대구·경북은 바이러스 확산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전사자 200여 명이 발생하는 바이러스 최전선이 되었다. 70년 전 강을 피로 물들이며 사수했던 6·25전쟁 때의 낙동강 전투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진자가 늘어나자 일부 대중은 신천지를 마녀사냥 하고 일부 여론은 다른 지역보다 일찍이 환자가 발생해 코로나와 악전고투하는 대구·경북을 국가를 위태롭게 하고 물의를 일으킨 지역으로 낙인찍으려 했다. 중국 우한처럼 대구·경북 지역을 봉쇄해야 한다는 의견이 검토된다는 보도도 있었다. 바이러스를 조기 차단하지 못해 발생한 불안과 분노를 환자나 의료인에게 돌리고 속죄양(scapegoat)으로 만들려는 집단 심리도 나타났다. 무보수로 봉사를 자원한 민간 의료인의 노력과 성과를 폄하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고등학생이 폐렴으로 사망하자 의사의 정상적인 치료와 진단 과정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의료 시스템 붕괴로 자칫 생지옥으로 변해갈 수 있는 도시를 건져낸 것은 의료인과 시민들의 힘이었다. 대구시의사회는 전국에 자원봉사를 요청했고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했다. 생업을 던지고 달려온 봉사자들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처럼, 별마저 사라진 캄캄한 상황에서 이들이 연대해 저항함으로써 대구는 잔혹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도 곳곳에 선의를 가진 사람이 많으며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대구는 몇 달간의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습관과 타성에 젖어 살던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한동안 바이러스를 옮기는 지역처럼 낙인찍힌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갈 것이다. 재난의 책임을 감염자에게 씌운 여론의 비난 때문에 당분간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대구의 노력으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졌지만 공은 정치권이 가져가고 과만 대구에 남았다. 그러나 이런 일이 다시 닥친다 해도 대구는 굴러 떨어진 바위를 지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시시포스의 심정으로 부조리에 맞서 나아갈 것이다. 지금은 가족들과 격리되어 고생하는 환자들, 감염이 두려워 귀가하지 못하고 임시 숙소에서 쪽잠을 자는 의료진, 환자를 돌보다 감염된 의료인들이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위로할 때이다.

이들에 대한 국민의 격려는 앞으로 닥쳐올 수도 있는 2차 파동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대구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미래 비전을 확인했다. 자유와 원칙, 전통에 대한 신념, 도덕성 등 대구의 가치는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인간적이고 내면적이며 질적 성장을 향한 길을 열었다. 지금 대구 곳곳에는 신록처럼 피어오르는 자부심과 자신감, 불굴의 이성이 보인다.